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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영화인사이드] 영화보다 더 슬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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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24 21:04:36 수정 : 2016-11-24 21: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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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극장가는 비수기이기도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더욱 한산하다. 전 국민의 나라 걱정과 촛불시위 참여로 영화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뉴스를 통해 전달되는 사건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보니 관객들이 굳이 극장을 찾지 않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의 현실과 아주 흡사한 내용의 영화들이 다시 눈길을 모으고 있다. 상상력의 산물인 영화 중에서도 간혹 몇몇은 실제 현실로 이루어진다지만 이번과 같은 경우는 흔치 않다.


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지난해 개봉된 신동엽 감독의 영화 ‘치외법권’은 비선실세 사이비 종교인이 국정을 움직인다는 내용이다. 당시에는 너무 황당하고 현실감이 떨어진다 해서 졸평과 함께 외면당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제와 돌이켜보면 전혀 터무니없지만은 않다. 황당한 영화 속 스토리가 지금의 현실과 유사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우민호 감독은 정경 유착관계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부조리를 들춰냈다. 최근 불거진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영화 속 내용과 닮은 꼴이다. 영화 속 대사들은 무서울 정도로 현실과 맞닿아 있어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하반기 개봉된 영화 ‘아수라’ 역시 지금 우리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영화는 자기 이익만을 좇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나쁜 놈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검찰과 경찰, 시장 등 거대 권력을 지나치게 저속하고 저열하게 표현해 수긍하지 못했다. 그러나 언론 보도에 비쳐지는 이 시대 공직자들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묘사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현실을 쏙 빼닮은 영화, 영화를 능가하는 현실. 영화보다 더한 사건들이 잇따라 벌어지면서 모두가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런 스토리는 영화 속, 상상 속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관객들은 영화와 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영화인들 역시 이러한 현실에 난감해한다. 자신들이 만든 영화보다 현실이 더 드라마틱해 앞으로 영화제작이 힘들 거라며 자조 섞인 말을 건넨다. 관객들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 모으기 위해서는 이제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영화는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사회의 부조리가 만연하고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지금의 현실을 비판하는 영화제작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사회현실 반영 영화의 전성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12월에 개봉할 ‘판도라’와 ‘마스터’는 사회비판적 영화이며 내년에 개봉될 영화 ‘택시운전사’와 ‘더킹’은 권력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한편, 신동엽 감독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영화제작 계획을 밝혔다.

사회비판 영화는 정부나 정치인들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답답함을 비록 영화로나마 대리만족시켜 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상상력의 결실인 영화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라는 것은 우리 사회가 너무도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를 능가하는 작금의 현실이 슬프고 또 슬프다.

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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