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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대통령, 급하면 “여성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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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28 21:02:20 수정 : 2016-11-28 2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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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각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사무실에서 한 워킹맘이 화상전화를 받는다. 이마에 물수건을 댄 아이의 모습이 보이자 워킹맘은 동료들에게 “많이 아픈가봐요”라며 울먹인다. 그러나 회의실을 나선 후 통화에선 “엄마, 나 (연기)잘했지?”라는 아이와 함께 환호한다. 이어 ‘쇼를 하면 엄마의 퇴근이 빨라진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몇년 전 TV에 방영된 한 통신사의 화상통화 광고다. ‘쇼를 하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인기를 끌었던 이 광고 시리즈는 아이를 이용해 워킹맘이 거짓말하는 존재로 희화화됐다며 뭇매를 맞고 상영을 중단했다.

결혼과 출산, 육아는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영역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이를 배려 받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여전히 터부시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주거나 공정한 평가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이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고 밝히며 논란이 일고 있다. 세월호 사고 발생 당일 대통령이 종적을 감췄던 ‘7시간’의 행적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귀를 의심했지만 ‘혹시 대통령이 밝히기 곤란한 여성 질환이나 질병을 치료받은 것인가’ 생각해봤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정황으로 봐선 확률이 낮아 보인다. 위급한 병환이라면 참모들이 ‘결례’를 무릅쓰고라도 대통령에게 물어본 후 국민들에게 밝히지 못할 리 없다.

결국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자 여성이라는 프레임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당장 치료받아야 할 여성으로서 말 못할 질병이 아닌 이상,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이 집무시간에 출근하지 않은 채 관저에서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 과연 무엇일까.

사생활 논란을 떠나 대통령의 근태도 심각한 문제다. 관저에서 스마트워킹을 솔선수범하느라 그동안 장관들의 대면보고도 받지 않고, 300여명의 국민이 수장되고 있다는 긴급보고조차 서면으로 받았단 말인가.

김수미 산업부 차장
박 대통령은 실정의 원인을 여성성으로 희석시키려 하고 있다. 정치 입문부터 청와대 입성까지 아버지를 등에 업고 올라가더니 내려올 때는 ‘여성’이라는 프레임으로 보호막을 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보다는 최초의 부녀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에게서 여성으로서 유리 천장을 깨느라 고군분투한 경험과 경력을 찾기 어렵다. 동질감을 느끼기는 더 어렵다. 대통령 아버지의 딸 ‘영애’로서 살아온 과거와 현재로 ‘박근혜’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편이 훨씬 쉽다.

취임 후 여성 대통령으로서 여성의 권익신장이나 유리 천장을 깨는 데 기여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일·가정 양립을 명분으로 시간제 일자리라는 계약직만 잔뜩 늘려놨고, 어쩌다 뽑은 여성 각료들은 구설에 오르거나 조롱의 대상이 됐다. 많은 여성들은 박 대통령으로 인해 유리 천장이 더 단단해지고, ‘여성혐오(여혐)’라는 뿌리가 더 깊어질까봐 걱정하게 됐다. 박 대통령은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아 가족이 없으며 대한민국과 결혼했다”고 말해왔다. 여성으로서 사생활을 보호해줄테니 이제 이 결혼은 그만 물러줬으면 좋겠다.

김수미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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