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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돈 좇는 싸움꾼보다 무도가로 불러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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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28 21:44:20 수정 : 2016-11-28 21:4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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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종합격투기’ UFC 웰터급 랭킹 10위 김동현 째진 눈을 가진 중학생 소년은 눈빛만큼은 매서웠지만 학교 폭력을 두려워하는 ‘외강내유’였다. 덩치도 키도 반에서 중간에 머물렀던 소년은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자기 방어를 위해 동네 체육관에서 유도를 배우기 시작했고, 고교 2학년 때 TV에서 우연히 본 일본 격투기에 빠져들면서 격투기 선수의 꿈을 꿨다. 그날부터 신체를 혹독하게 단련하며 극한의 고통을 견뎠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무도가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UFC 웰터급의 김동현(부산 팀매드)이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4TP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세계 최대 종합격투기 단체 UFC 웰터급 랭킹 10위 김동현(35·부산 팀매드)의 이야기다. 김동현은 다음달 3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T-모바일 아레나에서 열리는 UFC 207에서 타렉 사피딘(벨기에)과 맞붙는다. 지난해 11월 서울 대회 이후 무려 1년1개월 만의 복귀전이다. 예정된 상대가 훈련 도중 부상을 당하면서 두 차례나 경기가 불발돼 공백기가 의도치 않게 길었다.

최근 서울 서초구 반포동 4TP 체육관에서 만난 김동현은 스스로를 ‘평화주의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학창시절을 통틀어서 주먹다짐을 해본 적이 없다. 성향이 둥글둥글하고 온화한 편이다. 내가 힘을 기른 이유는 평화를 지키려면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곧 대회에 출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운동을 계속해 왔다. 연습할 때 실전처럼 스파링을 하니까 실전감각은 문제없다”고 특유의 파이터 기질을 과시했다.

김동현이 투혼을 불사르고 있는 UFC는 종합격투기계의 ‘메이저리그’다. 격투기 팬들의 시선이 UFC 한 곳에 쏠린다. 남자부 라이트급 챔피언 코너 맥그리거(아일랜드)와 전 여자부 밴텀급 챔피언 론다 로우지(미국) 등 격투기 팬이라면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스타들이 ‘옥타곤’이라 불리는 8각의 케이지에서 자웅을 겨룬다. 미국 내 티켓가의 데이터베이스를 집계하는 ‘시트긱(Seatgeek)’에 따르면 최근 열린 UFC 205의 재판매 티켓 평균가는 무려 1400달러(약 165만원) 수준으로 치솟았다.

김동현은 야수들이 득시글대는 옥타곤에서 ‘아시아 최강자’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것도 세계 남성의 평균 키와 몸무게에 알맞은 체급이기에 선수층이 두텁기로 소문난 웰터급에서다. 일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뒤 2008년 한국인 선수 최초로 UFC에 데뷔한 김동현은 데뷔 5연승을 포함해 통산 전적 16전12승(4KO)3패 1무효를 자랑한다.

김동현은 앞으로 UFC 1승만 더 거두면 미들급에서 활동한 오카미 유신(일본)의 아시아 선수 옥타곤 최다승(13승)과 타이를 이룬다. 김동현은 “최다승 타이에 큰 의미는 없다. 나중에 UFC 선수 전체를 통틀어서 최다승 기록에 도전하고 싶다”며 “동양 선수들은 유연하고 부드러운 몸과 특유의 끈질긴 승부가 강점이다. 마음가짐에 따라 이룰 수 있는 것이 달라진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도전해 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용인대에서 유도를 전공한 김동현은 UFC에서도 손꼽히는 수준급 ‘그래플러’다. 그래플러는 입식 격투가와 달리 유도, 레슬링 등의 기술을 활용해 그라운드에서 상대를 누르거나, 관절을 꺾는 등의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선수를 일컫는다. 김동현도 UFC 무대에서 최강 그래플러가 되길 원한다. 김동현은 “젖은 이불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 상대를 위에서 누르면 도저히 못 일어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특히 이불을 영어 발음대로 읽으면 악마(Evil)가 된다는 데서 어감도 좋다”며 웃었다.

CF와 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해 브라운관에서 얼굴을 자주 비추는 김동현은 방송인으로도 대중에게 친숙한 존재가 됐다. 옥타곤에서 살벌하기 그지없는 혈투를 보여주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미국 TV 만화 캐릭터인 ‘라바’의 얼굴 표정을 재현하는 그의 모습은 인터넷상에서 큰 화젯거리다. 그러나 김동현은 자신의 유명세가 오직 종합격투기 후배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수만 달러 대진료를 받는 파이터가 됐지만 아직까지 턱없이 부족한 금액에 옥타곤에 오르는 선수들이 많아 UFC ‘홍보대사’를 자처한 셈이다.

김동현은 후배를 향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른바 돈을 쫓는 ‘싸움꾼’보다는 격투를 사랑하는 ‘무도가’로 성장하라는 얘기다. 김동현은 “큰돈을 벌고 유명해지려고만 하면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다. 격투기 선수라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수련 자체가 목적인 무도가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줬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 김동현은 옥타곤에 오를 때마다 빨간색 속옷을 입는다. 평소 미신을 많이 믿는 것으로 알려진 김동현은 빨간색 속옷이 긍정의 기운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빨간색 속옷을 입고 경기에 나설 때마다 좋은 결과를 거뒀다고 한다.

이같이 다소 엉뚱하지만 낙관적인 성격의 김동현은 옥타곤에 오를 때마다 설레는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 탓에 언제까지 선수생활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김동현은 현역 은퇴를 하더라도 운동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태생이 무도가이기 때문이다. 김동현은 “은퇴하면 대중에게 잊히는 것은 당연하다. 내 위치로 돌아가서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계속할 것이다. 무도가는 평생 동안 배울 게 있는 만큼 나이 60세가 되어도 체육관에 있을 것”이라고 미소지었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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