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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35> 출산비용 ‘0’… 부러운 ‘출산천국’ 독일

관련이슈 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 디지털기획

입력 : 2016-12-03 14:33:58 수정 : 2016-12-03 14: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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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9주차의 어느 날, 병원에서 태아의 심장박동 소리를 처음 들었다. 손가락 마디 크기의 작은 생명이 내뿜는 거센 숨결에 가슴이 벅찼다. 산부인과에서는 “이제 고운맘카드를 만들어도 된다”며 정부 지원제도를 알려줬다. 정부 협력업체로 선정된 카드사의 고운맘카드를 만들면 50만원까지 무료로 병원비를 사용할 수 있었다. 국가에서 임신을 축하하며 주는 선물 같았다. “이걸로 출산 전까지 병원비를 낼 수 있겠는데?” 신랑과 나는 들뜬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50만원은 몇 달만에 동이 났다.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진료비가 최소 3만원에서 15만원 가량 나왔다. 진료비에 초음파 검사, 임신성 당뇨 검사, 기형아 검사, 철분제 구입 등 추가 진료가 덧붙을 때마다 병원비는 3∼4배로 뛰었다. 그나마 동네 중소형 산부인과를 다닌 덕에 작게 나온 것이었다. 큰 병원을 선택한 지인은 “갈 때마다 10만원 이상 나온다”며 한숨 쉬었다.

나는 최종적으로 출산 전까지 진료비 100만원, 자연분만에 필요한 각종 처치 및 입원비용 50만원 등 150만원 가량을 지출했다. 제왕절개를 했다면 200만원으로 올랐을 것이다.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들은 날, 50만원을 지원해준다는 말에 기뻐했던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마저도 지원해주는 게 어디냐’는 심정과 ‘새 생명을 만나는 첫 출발부터 이렇게 돈이 드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할까’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이런 와중에 독일에 사는 소꿉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에 입이 쩍 벌어졌다. 2007년 독일 유학길에 오른 뒤 이민자로 뿌리내린 친구는 독일에서 두 아이를 낳았다. 친구의 출산 비용은 0원이었다.

“진짜 아기 낳을 때까지 돈을 하나도 안 냈어? 임신성 당뇨 검사도 무료야?” 나는 믿기 어려워 재차 확인 질문을 했다.

“응, 첫째 때는 임신성 당뇨 검사 때 돈 냈지만 건강보험에서 나중에 돌려줬고, 둘째 때는 아예 병원에서 비용을 받지 않았어.”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독일에서는 건강보험 가입자라면 무료로 병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자연분만 때 선택하는 무통 주사도 무료였다. 다만 초음파 검사 횟수가 한국보다 적었다. 태아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입체초음파 등 부가적인 검사를 권유하는 한국 병원과 달리 꼭 필요한 검사만 받게 했다.

나는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를 단순 비교하며 “우리는 왜 이렇게 안 해주냐?”고 비판하는 걸 조심스러워했다. 나라마다 사회, 경제, 문화적 차이가 크기 때문이었고, 더 솔직한 마음은 가슴 깊이 와닿을 만큼 자세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친구로부터 독일에서의 생활상을 자세히 듣게 되면서 그 사회의 모습이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다. 우리가 바라는 국가상에 대해 자꾸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타국에서 출산이라는 엄청난 변화를 겪으며 친구는 서러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회가 주는 신뢰와 믿음의 가치가 이민자 생활의 어려움보다 컸다고 한다. 출산 후 친구가 독일 병원에서 받은 첫 식사는 빵이었다. 서걱서걱한, 퍽퍽한 질감의 요오드 빵이었다. 빵을 씹으며 미역국의 따뜻함을 떠올렸고, 미역국보다 더 그리운 친정 식구들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는 은근히 귀국을 종용했다. “타국살이가 쉽지 않을 텐데 한국에 들어오는 건 어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23년지기인 이 친구를 생각했고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를 답답해했다. 하지만 대답을 듣고는 내 욕심과 이기심을 내세운 것이 미안해졌다.

“사실 한국에 돌아가서 아이 키울 자신이 없어. 준비해 놓은 것도 별로 없는데 애들을 경쟁에 내몰고, 그러면서 내 노후 걱정도 해야할 것 같아서 겁이 나.”

친구는 출산 후 독일 건강보험 가입자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헤바메(산후도우미) 서비스를 받았다. 10번까지는 무료, 이후로는 산부인과의 처방이 있을 경우 추가로 이용할 수 있다. 아이 약값도 걱정 없었다. 독일에서는 만 18세 전까지는 약값을 전액 국가에서 지원해준다. 돈 문제로 아픈 아이를 방치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였다.

대학교뿐만 아니라 대학원까지 무상 교육이 이뤄지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주에서 대학생들은 대중교통을 공짜 또는 아주 저렴하게 이용했다. 나는 친구로부터 이 사실을 듣고 입이 딱 벌어졌다. 평일 저녁 7시 이후와 주말 등 특정 시간대에 대중교통을 무료로 탈 수 있고, 그 외 시간에는 일반인의 3분의 1 요금을 냈다. 청년을 위한 나라가 아닌가.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하철 무료 이용 혜택을 주는 우리와 달리, 독일 노인들은 할인된 금액이긴 해도 돈을 내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복지 서비스가 잘 돼 있는 만큼 친구가 부담하는 건강보험 부담률은 당연히 높았다. 우리 둘은 소득 대비 세율을 비교했다. 친구의 건강보험료는 소득의 14%를 차지했고 나는 4%였다. 둘 다 직장가입자인 만큼 회사에서 내주는 몫을 더하면 각각 28%와 8%였다. 어마어마한 차이였다.

이렇게 높은 세율에 독일인들이 저항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친구가 아는 한 독일 아주머니는 젊었을 때 큰 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면서 유치원생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거동조차 어려워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국가에서 진료비, 수술비, 간병비, 아이 육아비(베이비시터 비용) 등을 일체 지원해주면서 몸 회복에만 신경 쓸 수 있었다. 그녀는 그때부터 국가 보험의 찬양자가 됐다고 한다. 친구도 세금만 잘 내면 노후까지 삶의 기본 요소들을 갖추고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독일 아주머니 상황이 어땠을까. 모든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하기에 가족구성원이 크게 아프면 가계 경제가 휘청거린다. 삶의 벼랑에 내몰리는 위기감이 가족을 엄습한다. 아픈 사람은 죄인이 된다. 사보험에 가입했다면 진료비, 수술비 일부를 보조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돈 문제가 가족의 목을 조르게 된다.

그러므로 세금 더 내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자고 말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증세에 찬성하는 나만 해도 현재로서는 증세가 달갑지 않다. 마음 한 구석에 ‘내가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일까’라는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지켜보면서 이런 의심과 불안은 더욱 깊어졌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국가에 많은 돈을 내기보다는 그 돈으로 우리 가족 일은 우리끼리 책임지겠다는 개인 논리가 팽배해있다. ‘불신 사회’에서는 안타깝게도 이러한 각개전투가 형평성에 맞는 일로 보이게 된다.

유럽의 복지 서비스보다 더 부러웠던 건 국가 제도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였다. 세금만 잘 내면 국가에서 삶의 기본 요소를 충족해주고 노후를 보장해준다는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기꺼이 고율의 세금 부담하면서 아이들을 더 낳을 텐데…. 아이 키우기 어려운 사회는 전체적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는 사회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매일 주말 수백만명이 운집한, 밝게 빛나는 평화 촛불 집회를 보며 위로 받고 희망을 찾을 뿐이다. 이런 시민의식이 이어졌으면, 깊어졌으면, 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의 세상이 달라졌으면.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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