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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의창] 대쪽 선비 조식이 그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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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7 01:03:20 수정 : 2016-12-07 01: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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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때 외척 국정농단 목숨 건 상소 / ‘행동하는 지성’ 선비의 본분 다해
조선왕조가 500년 이상 장수한 요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를 찾을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왕의 독재를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춘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간쟁(諫諍)과 언론의 기능을 갖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언론 삼사라 해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여겼으며, 재난이나 기근이 닥치면 왕이 직접 구언(求言) 상소를 올리게 해,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지방의 선비들이 자유롭게 상소를 올리게 해 여론을 수렴하기도 했다.

16세기를 대표하는 선비 조식(曺植·1501~1572)이 1555년에 올린 한 장의 상소문은 명종시대 조정을 들끓게 했다. 상소문이 명종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고 있던 대비 문정왕후를 정조준했기 때문이다. “전하의 나랏일이 이미 잘못되어서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했고 하늘의 뜻이 가버렸으며 인심도 이미 떠났습니다. 비유하면 큰 나무가 백 년 동안 벌레가 속을 먹어 진액이 이미 말라 버렸는데 회오리 바람과 사나운 비가 어느 때에 닥쳐올지 까마득하게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 지경에 이른 지가 오래됩니다.(… ) 자전(문정왕후)께서는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다만 선왕의 외로운 후계자이실 뿐이니, 천 가지 백 가지의 천재(天災)와 억만 갈래의 인심을 무엇으로 감당하며 무엇으로 수습하시겠습니까?”

조식은 사직 상소문에서 외척에 의해 국정이 농단되는 현실을 날선 문장으로 지적했다. 권력의 몸통 문정왕후를 과부에 비유하면서, 명종을 ‘외롭다’고 표현한 부분은 대비의 수렴청정과 이에서 파생된 외척정치의 폐단을 직선적으로 비판한 것이었다. 외척정치는 국가의 기강 문란은 물론이고 권세가들의 매관매직으로 이어졌다. 특히 대비의 오라비 윤원형과 그의 첩 정난정의 권력 농단은 공분을 사고 있었다. 윤원형에 대해 “권력을 휘두르고 이익을 탐하는 일이란 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서울에 10여 채나 되는 커다란 저택이 있고 그 속에는 재화가 가득했으며, 또 처를 내쫓고 첩 난정을 처로 삼아 말하는 것은 모두 따랐으니, 뇌물을 받고 약탈한 일도 그 첩이 부추긴 것이 많았다”는 ‘명종실록’의 기록은 이들의 전횡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식은 선비가 서야 할 길은 비판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으로 여겼다. 왕에게 불경한 표현이 될지언정 현실을 바로 지적하는 것이 선비의 몫이라 판단했다. 상소문으로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군주에게 불경을 범했다’는 이유로 조식을 처벌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나 다수의 대신이나 사관(史官)들은 ‘조식이 초야에 묻힌 선비여서 표현이 적절하지 못한 것이지 그 우국충정은 높이 살 만하다’거나, ‘조식에게 죄를 주면 언로가 막힌다’는 논리로 그를 적극 변호해 줬다. 권력층의 국정 농단을 직선적으로 비판한 선비의 기개가 더욱 그리운 것은 최근의 국정 농단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언론은 과연 그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묻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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