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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박근혜식 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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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9 01:03:47 수정 : 2016-12-09 01: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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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몰락 이기심에서 비롯 / 자기를 비우는 이타심 중요 / 민심의 촛불 편승한 잠룡들 / 이순신 애국정신부터 배워야 분노한 민심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는 광화문이다. 수만으로 시작된 군중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광장의 촛불은 박근혜 대통령이 머문 청와대 코앞까지 진격했다. 촛불은 칠흑의 청와대를 환히 비췄다. 400여년 전 한산도를 비추던 달빛보다 오히려 밝았다. 놀란 대통령은 국민 앞에 세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을 떨게 했던 촛불의 진원지가 장군의 동상이 있는 광화문이란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순신 장군은 박근혜와 아버지 박정희가 흠모했던 애국의 표상이었다.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 장군의 동상을 세운 이는 박정희였다. 아버지는 장군의 숨결이 서린 아산과 한산도를 성역으로 만들었다. 딸은 그런 아버지 그늘에서 이순신의 애국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랐다. 훗날 “나라가 잘되고 국민이 행복하게 되는 것이 나의 목적이고 그 외에는 다 번뇌”라던 딸의 어록 역시 이순신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딸 박근혜는 장군을 닮고 싶었다. 대통령이 되자 활을 손에 놓지 않은 장군처럼 수첩을 끼고 나랏일을 챙겼다. 밤늦게 보고서를 읽고 국정을 살핀다는 얘기까지 들렸다. 이순신이 전시 7년 동안 허리의 전대를 한 번도 풀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박근혜가 쏜 애국의 화살은 과녁을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그 화살에 맞아 국정이 중상을 입고 나라가 쑥대밭이 됐다. 도대체 왜? 과녁의 설정이 처음부터 잘못됐기 때문이다. 엉뚱한 방향으로 화살을 쐈다는 뜻이다.

박근혜의 과녁은 줄곧 자기에게로 향했다. 자기중심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자신의 이해가 먼저였다. 자기에게 의리를 지키지 않은 사람은 수첩에서 아예 지워버렸다. 그에게 수첩은 나라를 지키는 화살이기보다는 자기보호의 방어막에 불과했다. 40년 지기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을 살뜰히 챙긴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할지라도 그게 애국일 리는 없다. 애국으로 포장된 이기심일 뿐이다.

이순신의 애국은 박근혜와는 정반대였다. 애국의 화살이 자기에게로 향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분의 애국은 언제나 나라와 백성을 향했다. 장군은 영화 명량에서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고 외쳤다. 자기 수족들만 좇았던 박근혜의 의리와는 근본이 다르다. 박근혜의 애국이 이기적이라면 장군의 애국은 이타적이었다.

대통령 박근혜가 불통의 대명사가 된 것도 자기중심적 사고와 무관치 않다. 자기에게 빠진 사람은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시선이 자기 쪽으로 고정되면 외부와의 소통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박근혜식 불통의 출발이다. 반면에 오직 나라와 백성을 생각했던 장군에게 소통은 생활 그 자체였다. 장군은 틈만 나면 부하들과 마주앉아 병법과 전술을 토론했다. 임금과 조정대신, 동료, 휘하 장졸을 넘나들며 장계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 말미에는 반드시 ‘이순신 소(疏)’라고 적었다. 널리 쓰이는 배(拜)나 배상(拜上) 대신에 소통의 ‘소’를 쓴 것은 얼마나 소통을 중시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렇듯 이순신의 이타적 소통이 민심을 하나로 모았다면 박근혜의 이기적 불통은 민심을 흩트렸다.

촛불이 타오르면서 대선 잠룡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자신의 주가를 올리기 위해 분노의 촛불에 기름을 끼얹는 자극적 발언이 판을 친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법적 절차를 기다리지 말고 즉각 대통령에서 물러나라고 떠든다. 어떤 이는 목을 축이는 시원한 사이다에 자신을 비유하고, 다른 이는 배를 채우는 고구마에 빗댄다. 의미가 묘하다. 대체 누구의 목과 배를 채우겠다는 것인가.

대통령 박근혜도 잠룡 시절엔 애국을 입에 달고 다녔다. 입은 국가를 향했지만 마음은 사심으로 가득했다. 그 이기심이 오늘의 나락으로 끌어내렸다. 대선 잠룡들이 그의 전철을 밟는다면 국가적 비극이다. 자기를 채우는 박근혜식 애국은 위험하다. 진정한 애국은 자기를 비우는 이순신의 애국이어야 한다. 잠룡들은 광장의 촛불에 편승해 자기 잇속을 채우려 해선 안 된다. 광장의 장군이 잠룡들의 언행을 지켜보고 있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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