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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시판된 다양한 삐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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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첫사랑의 그리움처럼 남은 무선호출기 삐삐. 주머니나 옆구리에서 한 몸이 되어 애증의 시간을 보낸 존재이지만 이젠 아련한 추억이 됐다. 젊은 세대에게는 생소한 삐삐는 전화기로 수신번호를 남기면 “삐삐삐” 소리 내며 상대를 호출하던 통신기기. 1982년 12월15일 첫 만남 이후 사람들과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 국민 필수품으로 떠오르며 1997년에는 가입자가 1517만명에 이르렀다. 공중전화 앞에는 액정에 새겨진 전화번호로 연락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다.

문자나 음성으로 짧은 메시지를 남길 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추억을 자극하는 건 난수표 같은 숫자암호. 숫자로 이어진 조합은 주옥 같은 소통의 언어가 됐다. 가장 많이 날아온 메시지는 8282(빨리빨리). 성질 급한 직장상사들이 애용했다. 전화가 늦으면 ‘1818’이라는 욕 폭탄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준 삐삐를 지옥의 선물이라고 불렀다. 가장 현란한 삐삐언어는 연인들의 메시지. 0124(영원히 사랑), 2514(이 세상 오직 하나뿐인 사람), 1010235(열렬히 사모). 닭살 돋는 숫자조합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알쏭달쏭해 약어해설집이 나올 정도였다.

언제 어디서건 바로바로 통하는 스마트폰 세상. 기다림과 설렘의 애틋함은 구닥다리 감성이 되어버렸다. 편리함만 찾는 기계적 소통, 사람끼리의 정감이 메말라가는 건 아닐까.

김규영 편집위원

△1996년 12월12일 한국, OECD 12번째 가입

△1995년 12월16일 축구 응원단 붉은악마 탄생

△1903년 12월17일 라이트 형제 비행 처음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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