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들판을 건너는 기러기떼는
끝도 없이 밀려오는 잔물결 같고
그 물결 거슬러 떠가는 나룻배들 같습니다
바위 끝에 하염없이 앉아 있으면
삐걱삐걱, 낡은 노를 젓는 날개소리 들립니다
어찌 들어보면 퍼걱퍼걱, 무언가
헛것을 퍼내는 삽질소리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퍼내도
내 몸 속의 찬 강물 줄어들지 않습니다
흘려 보내도 흘려 보내도 다시 밀려오는
저 아스라한 새들은
작은 밥상에 놓인 너무 많은 젓가락들 같고
삐걱삐걱 노 젓는 날개소리는
한 접시 위에서 젓가락들이 맞부비는 소리 같습니다
그 서러운 젓가락들이
한쪽 모서리가 부서진 밥상을 끌고
오늘 저녁 어느 하늘을 지나고 있는지
새가 너무 많은 것을 슬픔이라 부르고 나니
새들은 자꾸 날아와 저문 하늘을 가득 채워버렸습니다
이제 노 젓는 소리 들리지 않습니다
필자는 그간 나희덕 시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남성 서너 명을 능가하는 넓은 포용력,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아가자기한 감수성, 균형 잡힌 시적 지성 등 여러 덕목을 떠올렸다. 그리고 궁금했다. 접촉해 본 바 평온하고 맑은 얼굴 표정과 달리 가슴속에는 슬픔이 꽉 차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김영남 시인 |
김영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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