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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이젠 국가 개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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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12 22:02:14 수정 : 2016-12-12 2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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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윤리·철학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큰 도덕적 잣대는 ‘수치’(Aidos)였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부끄러운 평판을 들어 인간으로서 존재를 부정 당하느니 차라리 ‘광인’(狂人)으로 낙인찍히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동양의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역설했다. 내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4덕(德) 중 의(義)를 뜻함인데, 이게 없으면 ‘사람도 아니다’(非人也)고 단언했다.


나기천 산업부 기자
맹자의 임금에게는 ‘불소추 특권’도 없었다. 하늘이 내린 존재지만, 덕이 없어 백성이 따르지 않는 임금은 임금이 아니라 ‘일부’(一夫)에 지나지 않으며, 언제든 옥좌에서 끌어내려도 된다고 맹자는 봤다.

고대 신화의 시대, 절대왕정·전제군주 시대에도 이런 규범이 통했는데 현대의 대한민국은 그렇지 못한 듯해 안타깝다. 하늘이 내린 임금도 단죄할 수 있던 근거인 부끄러움이 2016년 한국의 대통령에겐 없어 보인다. 지난 9일 국회 탄핵소추를 당한 대통령이 ‘피눈물’ 얘기를 했다고 한다. 정확한 진의야 알 수 없지만, 마치 자신이 사람들의 모든 죄를 대속(代贖)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처지라고 착각하고 있지 않나 싶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권력자를 둔 나라는 불행하다. 물론 탄핵안이 가결됐다고 해서 ‘피의자’ 대통령에게 씌워진 모든 혐의가 인정된 것은 아니다. 탄핵소추가 정당했는지는 헌법재판소가 가려줄 것이며, 검찰이 적용한 혐의는 추후 특별검사 수사 등을 거쳐 법원에서 입증되거나 소명될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전해진 ‘최순실 게이트’의 참상은 대통령이 백번 천번 부끄러워해도 모자랄 정도로 참혹하다. 대통령 본인이 적극적으로 주도하지 않았다 해도 속칭 ‘B급’도 안 되는 ‘비선실세’에 농락당한 꼴이다. 이런 필부(匹婦)의 허튼짓 때문에 헌재 탄핵 심판 날까지 나라가 ‘시계 제로’의 암흑기를 보내야 할 판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이들이 또 있다. 정치인들이다. 탄핵안 가결은 정치권이 이뤄낸 성과가 아니다. 매일 광장을 메운 민초의 촛불이 견인한 결과다. 시민들이 대통령 거취를 놓고 우왕좌왕했던 정치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광장에 모였을까. 아니다. 외려 그들이 못 미더워 나온 것이다.

국민은 변했다. 내가 주권자라는 깨달음, 내가 움직여야 나라가 바뀐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데 이 위대한 국민 덕에 변화의 기회를 맞은 정치권은 어떤가. 당을 공중분해해 석고대죄해도 시원찮을 여당은 서로 “네가 나가라”고 쌈박질만 하고 있다. 내 기득권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조폭 정치’다. 야당은 벌써 정권을 다 잡은 듯 거침이 없다. 우리 민주주의가 국회가 아닌 광장을 더 헤매야 제자리를 잡을 것 같아 아찔해진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탄핵안 가결의 끝은 정치개혁이어야 한다. 정치가 바뀌어야 국가 개조가 가능하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오롯이 드러난 현재, 촛불 민심을 제도화하는 것은 정치권 몫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탄핵 심판까지 남은 몇 달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우는 ‘골든타임’이 돼야 한다.

나기천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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