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공감!문화재] 역사 품은 이조묵의 거문고

관련이슈 공감 문화재

입력 : 2016-12-14 22:10:26 수정 : 2016-12-14 22:10:2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차령산맥의 덕숭산 아래 위치하여 예로부터 수많은 고승을 배출한 천년고찰, 수덕사. 한국 선불교의 진흥과 항일운동에 힘썼던 만공 스님의 행적으로 더욱 유명한 이곳에 스님이 아꼈던 거문고 한 점이 전해오고 있다(사진).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에 소개되기도 했던 이 거문고의 원주인은 고려 공민왕이었다고 한다.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결국 고종의 5남 의친왕의 애장품이 되었고 이후 만공 스님이 갖게 되었다고 하니 유물 하나를 두고 수백 년을 넘나드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거문고에 얽힌 또 다른 인물, 이조묵(李祖默, 1792-1840)에 대해서는 좀처럼 알려지지 않았다. 이조묵은 오세창이 ‘조선의 으뜸’이라고 평했을 정도로 당대를 대표한 컬렉터였다. 거문고의 원주인이 공민왕이라고 말한 이도 바로 이조묵이다. 그는 이 사실을 확신한 듯 1837년 거문고의 뒷면에 유래를 읊은 시문을 새겼다.

이조묵의 기이한 수집벽(收集癖)에 대해서는 많은 일화가 전해 온다. 19세기 학자 이기(李沂)는 이조묵이 소장했던 공민왕의 거문고를 언급하면서 왕희지가 잡았다는 파리조차 믿고서 애써 간직했다고 회상했다. 정확한 식견보다는 엉뚱하고 맹목적인 수집가로서 기질을 강조한 일화처럼 이조묵은 말년에 가산을 탕진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최근 시인이자 서화가, 금석고증학자로서 이조묵이 새롭게 조명 받으면서 그가 소장했던 거문고 역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동나무 판대 위의 거북 등가죽으로 만든 노란색 대모(玳瑁) 장식, 학슬에 매단 향낭, 옹골차 보이는 여섯 줄이 은은한 가락을 상상하게 만든다. 현존 최고의 15세기 김일손의 거문고가 선비다운 절제된 멋을 대표한다면 이조묵의 거문고는 화려하면서 섬세하다.

거문고가 고려시대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시대를 달리해 여러 인연을 맺어 주었고 소중히 지키고자 한 마음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물이 가진 무언(無言)의 힘이 아닐까 한다.

황정연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