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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문학기행] 내려올 때 더 눈부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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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16 01:05:45 수정 : 2016-12-16 01: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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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인생의 앞모습만 보고 달려 / 매 순간 최선 다해야 뒷모습이 아름다워
연일 계속되는 청문회와 특검 정국을 바라보자니,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를 구분하지 못하는 수많은 권력자의 모습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사람들이 이제 국민 앞에 더없이 부끄러운 존재가 돼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니, 한창 때 피어나는 것보다 오히려 어려운 것은 ‘제때 잘 내려오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인생의 전성기와 쇠퇴기를 모두 지혜롭게 보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인생의 참모습이 숨김없이 드러날 때는 오히려 절정에서 내려오는 순간이다. 한창 때 눈부신 것은 당연한 것이니, 내려올 때 눈부신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내면의 빛을 지닌 사람이 아니겠는가.

정여울 작가
외부 상황이 바뀔 때에야 비로소 내려오면 이미 늦어버린다. 퇴직을 하거나, 이미 노인이 된 이후에 내려올 준비를 하면 늦다. 오히려 젊었을 때부터 어떻게 하면 인생의 황혼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신동엽 시인은 ‘좋은 언어’라는 시에서 말한다. “외치지 마세요/ 바람만 재티처럼 날려가버려요 (…) 조용히/ 될수록 당신의 자리를 아래로 낮추세요.” 정말 그렇다. 바닥에서부터 생각할 줄 아는 사람, 내려와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올라갈 때나 내려올 때나 한결같이 본분을 지킨다. 이형기의 시 ‘낙화’에서처럼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 지금은 가야 할 때”를 아는 사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꽃답게 사라지는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모두들 인생의 앞모습만 보고 살다보니, 인생의 뒷모습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 같다. 인생의 앞모습이 남들에게 보여주는 이미지라면, 인생의 뒷모습은 아무도 없는 한밤중 내가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다. 인생의 앞모습은 경쟁과 성공을 향해 달려가곤 하지만, 인생의 뒷모습은 고독과 불안일 때가 많다. 인생의 앞모습과 뒷모습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페르소나와 그림자를 닮았다. 앞모습은 타인에게 노출되는 이미지이지만, 뒷모습은 나도 모르는 내 상처와 그림자의 이미지다. 앞모습이 화려한 이들은 많지만 뒷모습이 저절로 아름다운 사람은 드물다. 거울에 비춰볼 수 있는 앞모습과 달리, 뒷모습은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정직한 눈을 통해서만 비춰지기 때문이다.

사라져가는 인생의 뒷모습조차도, 그가 남긴 인생의 그림자조차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결국 초라하고 처참하다. 최고의 음식은 식어서도 그 향기로운 풍미를 잃지 않듯이, 본래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온 사람은 절정에서 내려온 뒤에도 그윽한 향기를 남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구절은 언제 읽어도 가슴을 날카롭게 할퀴고 지나간다. 그것은 나의 사랑, 나의 결별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고,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영혼의 슬픈 눈을 가진 사람만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저 타는 저녁노을처럼 장엄하게 사라져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야말로 멋진 인생의 주인공이 아닐까.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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