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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나는 질문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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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20 01:00:06 수정 : 2016-12-20 01: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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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적 질문이 새로운 성찰의 계기로 / 속시원한 대답이 없는 현실 안타까워
폴란드 출신으로 버클리와 옥스퍼드대학에서 가르쳤던 철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교수는 의문문으로 서양철학사를 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질문’은 그런 의도의 소산이다. “우리는 왜 악행을 저지르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소크라테스에 접근하고, “진리는 어디에서 오는가”라며 플라톤에, “행복이란 무엇인가”와 함께 아리스토텔레스에, “악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다가간다.

또한 현대철학에서는 “세계는 선한가”라고 질문하며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우리는 자유 의지를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뤼흐 스피노자에, “최선의 국가 형태는 무엇인가”라며 토머스 홉스에, “선과 악이 없는 진보는 가능한가”라며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에, “선과 악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세계에 다가서면서 새로운 질문을 거듭 발견해 나가는 식이다.

“모든 위대한 법칙은 질문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마이클 브룩스의 ‘물리학을 낳은 위대한 질문’도 비슷한 책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사과는 왜 아래로 떨어지는가”, “고체는 정말로 형태가 고정되어 있는가”, “신의 입자란 무엇인가”, “카오스 이론은 재앙을 예견하고 있는가”, “빛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는 시뮬레이션 속에서 살고 있는가”, “자연에서 가장 강한 힘은 무엇인가” 등 질문들이 흥미롭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의 책’ 역시 질문으로 이루어진 시집이다. 그는 묻는다. “겨울에, 나뭇잎들은/ 뿌리와 함께 숨어 살까”나 “우리는 구름에게, 그 덧없는 풍부함에 대해/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할까” 같은 시구처럼 자연물이나 자연현상에 대한 그의 질문은 엉뚱한 풍부함으로 넘쳐난다. 다채롭고 돌연한 상상적 질문이 자연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리고 시인의 질문은 자기 자신에게로 내밀하게 향한다. “내가 잊어버린 미덕들로/ 나는 새 옷 한 벌 꿰맬 수 있을까”라며 반성적 성찰의 심연을 깊게 한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라는 질문과 더불어, 아이였던 나와 말년의 나 사이의 거리를 인식하면서 생 전반을 반추한다. 그러면서 “당신의 꿈속에서 울릴/ 종을 당신은 어디서 찾을까”라며 새로운 희망의 기획에 몰입하기도 한다. 시인의 근본적인 질문은 가령 이런 것이다. “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지 내가/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려고 왔는지” 어디 네루다에게만 궁금한 일이겠는가. 우리 모두가 탐문하고 싶어 한 생의 심연에 값하는 질문이 아니겠는가.

또 한 해를 보내며 연말과 연초의 거리를 인식하며 질문하는 시기다. “정월 초하루의 꿈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이게 나라냐”에 이르기까지, 올해는 유난히 질문이 많았던 해가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든 공동체적으로든 참으로 많은 질문을 던져야 했고, 그 질문에 대한 속 시원한 대답을 알 수 없어 갈증이 심했던 해였지 싶다. 다만 질문의 춘추전국시대를 지내면서 ‘나는 질문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에 대해 숙고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큰 수확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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