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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에 폐선 하나가 누워 있다. 칠백년 동안 바다 밑 깊은 뻘 속에 묻혀 있다가 그물에 걸려 드러났던 신안 앞바다 목선처럼. 조각난 마스트는 좌심방 입구에 침처럼 꽂혀 있고, 이물 쪽 갑판 쪼가리들은 우심실 두꺼운 심장 근육에 고르게 박혀 있다. 평상시에는 그저 묵지근할 뿐이지만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면 통증을 견디기 쉽지 않다. 산에 오를 때나 뜀박질을 할라치면 내 심장은 불에 달군 것처럼 아프다. 이런 재난을 피하려면 가급적 흥분하지 말아야 하고 천천히 걸어야 한다. 정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심호흡을 한 뒤 서둘러 잠 속으로 달아나는 수밖에 없다.

오래전 ‘모란무늬코끼리향로’라는 소설에 저렇게 썼다. 바다에 가라앉은 난파선이 어초 역할을 하여 그 지점을 찾아가 낚시를 하다가 향로를 유품으로 건져 올려 연고자를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그 사연이 늘 심장에 폐선 쪼가리가 박힌 것처럼 아팠다. 오늘 같은 섣달 그믐날의 밤을 ‘제야(除夜)’라고 하거니와 이수익 시인은 이 밤을 붙들고 이렇게 썼다.

“오늘밤은/ 서럽게 울자./ 누구보다도 나를 생각하며/ 서럽게, 서럽게 한 번 울자./ 지난 한 해 저질렀던 수많은 죄들/ 하나씩 하나씩 떠올리며/ 그 죄에 돌멩이 맞듯 맞아 피 흘리며 쓰러진/ 사람들을 생각하며/ 오늘밤은 빈방에서 고독하게 울자.”

우리가 이 해 지은 죄는 무엇인가. 아무리 돌이켜보아도 핍박받았거나 억울한 일만 있지 누군가에게 돌을 던진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시인은 살펴보자고 한다. 달팽이가 내 무심한 걸음에 밟히진 않았는지, 아름다워서 꺾었던 꽃 한 송이의 아픔을 지나치진 않았는지, 울고 울어 모든 것을 드러내자고 한다. 어디 그리 아름다운 잘못들뿐이랴. 따지고 보면 외면하고 싶은 잘못들 한둘일까.

그 혹은 그녀에게 무심해서 죄를 지었으며, 사랑을 명분으로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었으며, 사랑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고 무너진 일들, 서럽게 울고 울어 반성할 일이다. 섣달 그믐날 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변한다는 오늘밤, 우리는 뜬눈으로 이 밤을 지새우면서 무엇을 반성할까. “마침내 그 울음 지쳐서 바닥나면/ 한없이 투명해진, 고요한 내 마음 위로 자정이 오고/ 아아, 그때 눈부시게 찬란한 새해 첫 새벽이 열리리.” 시인은 울음의 끝을 저리 희망적으로 기대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막막하다. 차가운 물 밑에서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침몰된 ‘세월’이 다시 심장을 아프게 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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