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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신춘문예] 새 숨결로 일어서는 새 아침…모두 새 꽃이다 -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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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02 02:00:00 수정 : 2017-01-02 01:4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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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시
눈부신 손으로, 새 호흡으로

문정희

새 숨결로 일어서는
새해 아침

우리들의 손은
모두 새 꽃이다

이 손으로 무엇을 할까
삼백 예순 다섯 개의 태양이
우리 손 안에 숨 쉬고 있다

2017년 1월 1일
신방(新房)을 열듯이
두근거리며 새 달력 속으로 들어간다
가장 간절한 사랑으로
눈부신 당신을, 설레는 보석을 끌어안는다

촛불처럼 속 깊이 울음을 삼키며
기다린 것밖에 없는데
이리도 풍성한 시간이 다시 오다니

기억하리라
보석이 순간에 모래가 되어 부서지는 것을
회오리가 되어 상처와 슬픔을 만드는 것을

그리하여 다시는
우리의 소망이 하나의 탑이 되지 못하고
낮은 계단처럼 스러지던 시간들을 잊지 않으리라

태양은 절로 떠오르지 않고
뜨거운 피의 열망으로 떠오른다

싱싱한 미래의 언어로
펄펄 뛰는 심장으로
새 달력을 연다
다시는 반복 할 수 없는 단 한 번의 나이테가 되려고
장엄한 서사시의 한 페이지가 되려고
삼백 예순 다섯 장의 백지를 연다

쉬잇! 맑은 물이 솟아나는 발원지로 가서
머리를 감고
내 안에 숨 쉬는 가장 순결한 아이를 깨워
새 무대, 새 주인공이 되리라

더 이상 지폐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들기보다
더 이상 무지하고 부패한 언어에 귀가 멀기보다

맨발로 한 걸음 한 걸음
새 태양을 향해 걸어가리라

내 손에 든 망치로 내가 나를 때리며
넌 할 수 있어! 좀 더 좀 더!
탐욕과 경쟁으로 지친 노동자를 만들며
가혹하게 빠른 속도를 다그치기보다

책 속의 풍성한 언어로 나를 사랑하고
자유와 용기를 사랑하고
당신의 슬픔을 깊이 사랑하리라

모든 아름다운 것은 눈물과 고통을 품고
모든 빛나는 것은 두렵고 위험한 것과 함께 있다

천년 빙설처럼, 함박눈처럼
새 숨결로 일어서는
새해 아침

혼돈과 분노의 기억을 떨치고
솟아난 깃털!

오늘, 또 오늘
찬란한 탑이 되는 일 말고
이 눈부신 손으로, 새 호흡으로
무엇을 더 노래할 수 있으랴



■문정희(시인)

여성성과 생명을 담보한 활달한 시풍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 무대에서 각광받는 시인이다.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1969년 등단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등 다수의 시집과 시선집 ‘지금 장미를 따라’ 외 장시집, 시극, 산문집 등 출간 △9개 국어로 출판된 번역 시집 12권.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마케도니아 세계시인 포럼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시인상’, 스웨덴 시카다(Cikada)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40대 회장

■정소연(화가)

새해엔 현실의 무게를 털고 훨훨 하늘 높이 꿈꿀 수 있는 기원을 담았다. 회화, 입체, 설치, 비디오, 뉴미디어를 넘나들며 현실과 가상이 혼재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196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미술대학, 대학원 졸업 △뉴욕 공과 대학(New York Institute of Technology) 대학원 커뮤니케이션아트 석사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영상공학 박사(Ph.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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