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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통금 때의 서울역 광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
만일 밤의 일상이 멈춰 버린다면? 이런 암담한 상황이 상상조차 되지 않겠지만 밤을 빼앗긴 시절이 있었다. 이른바 야간통행금지. 1945년 미군정이 도입한 이래 37년간 국민의 밤을 가두다 1982년 1월5일 족쇄가 풀렸다. 밤 12시 “애앵∼” 하는 사이렌이 울리면 새벽 4시까지 도로를 나다닐 수 없었다. 통금에 걸리면 경찰서에 끌려가 밤을 지새운 뒤 즉심에서 벌금을 물거나 구류를 사는 곤욕을 치렀다. 천하의 술꾼들도 자정 전에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가야 했다. 요즘같이 2차, 3차 여유 있게 즐기는 건 엄두도 못 냈다. 엉큼한 총각들은 어떻게든 금지된 시간의 덫에 애인을 잡아두려고 별의별 꼼수를 다 썼다. 당시 여관과 여인숙은 잘나가는 업종이었다. 귀가 못한 사람들이 단속을 피할 수 있는 도피처였기에. 물론 예외는 있었다. 열차를 타고 오다 늦은 승객이나 상을 치러야 하는 사람들에겐 임시통행증이 발급됐다. 고위 공무원이나 심야취재를 하는 기자들에게도 야간통행증인 ‘패스’가 있었다. 이것만 있으면 밤늦게 활보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그러다 보니 이 요물이 신분과시용 마패로 둔갑하는 부작용도 많았다. 24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 자유를 찾았지만 오늘 우리의 밤은 고달프다. 생계 때문에 새벽까지 삶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들이 편안한 쉼을 보장받을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새로 밝은 정유년,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향한 소망이다.
김규영 편집위원
△1959년 1월3일 알래스카 미국에 편입
△1982년 1월4일 중고생 두발·교복 자율화
△1968년 1월5일 체코, 프라하의 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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