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AI는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살처분 가금류 마릿수는 그동안의 기록을 갈아치운 지 오래다. AI 위기경보도 처음으로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됐다. 바이러스 유형은 H5N6형 외에 H5N8형, H7N2형, H7N7형 등이 농장과 들판에서 검출됐다. 유례없는 일이다. 고양이가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도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다.
박찬준 경제부 부장 |
정부의 늑장 대처도 확 뜯어고쳐야 한다. 전염성이 강한 AI 바이러스는 방역 ‘골든타임’을 놓치면 전국 각지로 삽시간에 퍼진다. 일본에서도 H5N6형 AI가 발생했지만 피해가 미미한 것은 신속하고 강력한 초동대처 덕분이다. 일본은 AI 발생 즉시 총리가 나서고 ‘심각’ 단계의 위기경보를 발령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AI 위기경보가 관심→주의→경계→심각 4단계나 거쳐야 한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최근 위기경보를 2단계나 1단계로의 단축을 검토하기로 한 것은 늦은 감이 있지만 올바른 판단이다.
가금류와 농가 관계자의 다른 지역 이동을 일정기간 제한하는 스탠드스틸(Standstill)도 개선 대상이다. 스탠드스틸의 목적은 AI 전파 차단이다. 그런데 최대 이틀 전에 알려지는 바람에 시행 직전 평소보다 달걀 수거 차량 이동이 2∼3배 늘어 AI가 급속하게 확산한 측면이 있다. 스탠드스틸 기간에도 달걀이 이미 포장돼 대형마트로 납품되는 차량의 이동을 막지도 못했다. 스탠드스틸을 3번이나 했는데도 AI가 확산한 이유다. 스탠드스틸은 전격적으로 강력하게 시행돼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AI의 인체감염에도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철새나 길 고양이, 쥐와의 접촉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미국에서 수의사가 AI에 감염된 고양이로부터 옮긴 사례가 있다. AI가 발생하거나 철새가 많은 지역에서는 애완용 개, 고양이를 야외로 데리고 나가는 것을 삼가자. 살처분·매몰 처리 등에 동원된 고위험군이 3만명에 달한다. 이들에 대한 예방조치와 모니터링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가오는 겨울에는 충남 서산 천수만이나 전북 군산 금강하구둑,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와 같은 철새도래지에서 맘 놓고 겨울 진객의 군무를 만끽하고 싶다.
박찬준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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