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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의경제수첩] 짖지 않는 ‘워치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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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06 23:14:19 수정 : 2017-01-07 11: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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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검사’ 자괴감 빠진 금감원
정체성 잃고 사기도 떨어져
경고 울리는 본연의 기능 약화
결국 피해는 죄없는 국민 몫
새해 벽두부터 금융감독원이 시끄럽다. 검사업무에 대한 불만과 성토가 꼬리를 문다. 이러려고 검사역 됐나, 자괴감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잖다. 사내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앱’의 풍경이다. 이유는 검사 같지 않은 검사, ‘물검사’에 있다.

“몇년 전만 해도 검사역이 뜨면 벌벌 떨었는데….” 누군가는 옛날을 회상하며 개탄했다. “그런 긴장감 조성만으로도 자정기능이 있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또 다른 이는 “명검사역조차도 형식적인 리포트나 쓰고 있는 현실”에 혀를 찼다.


류순열 선임기자
많은 이들이 물검사의 주범 격으로 ‘체크리스트’를 지목했다. 경영실태평가 체크리스트에 맞춰 그야말로 체크만 하는 형식적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매뉴얼대로 이건 구비됐는지, 저건 설치돼 있는지 점검하는 수준이지 검사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피감기관인 금융회사들이야 불만일 리 없다. 검사라고 해봤자 아픈 지적도 없으니 긴장감이 예전 같지 않다. “뭐 이렇다할 지적도 없고 금융사들은 좋지. 그런 검사 받아놓고 아무 이상 없다고 선전도 한다. 실상은 아닌데….” 한 관계자는 “형식적 검사로 금융사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워치독(watchdog)으로, 금융시장의 위험을 먼저 감지하고 경고음을 내는 게 주 임무다. 바로 그 위험을 감지하는 일이 검사인데, 내부에서부터 그 ‘본질적 업무’가 의심받는 상황이다. 금감원의 정체성이 흐릿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한 관계자는 “정체성을 잃어가면서 사기도 떨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익명의 난상토론에 금감원 수뇌는 냉소적이다. 고위 관계자는 “당사자 의지의 문제다. 부당한 사안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하지 말라고 한 적 없다”고 말했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개편된 검사체계와 그 분위기를 감안할 때 공허한 얘기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검사체계를 사실상 경영컨설팅을 해주는 ‘건전성검사’와 위법행위를 잡아내는 ‘준법검사’로 이원화하면서 금감원의 검사기능은 전체적으로 약화했다는 게 중론이다.

무엇보다 수뇌가 강조하는 ‘시장친화적 검사’의 영향력이 지배적이다. 수뇌가 잡아놓은 흐름을 아래서 개인의 의지로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어떤 이는 “언젠가부터 건전성검사를 나가 문제점을 찾아 지적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풍토가 생겼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는 “뭐라도 지적하면 마치 금융시장에 걸림돌이 되는 양 주저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익명의 폐쇄적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물검사 논란이 금감원 내부 문제일 수만은 없다.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형식적인 것에 치우치다보니 정작 소비자 피해 가능성이나 다른 위험 징후는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다”는 익명의 하소연은 시사적이다. 연장선에서 “이러다 큰일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제2의 저축은행 사태 같은 대형사건이 터질 수 있다는 말이다. 저축은행 부실은 2010년 봄부터 공공연히 위험성이 거론되던 ‘시한폭탄’이었다. 그러나 경고음은 울리지 않았다. 그해 가을 G20(주요 20개국)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정권이 “잔칫상에 재 뿌리지 말라”며 덮은 결과다. 금융당국이 제 역할을 했다면 터지지 않았거나 최소한 ‘호미’로 막았을 것이다.

‘순한 워치독’의 근본적 이유는 금융감독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금감원은 금융정책 당국인 금융위의 지도·감독을 받는 예속기관이다. 독립성이 없다. 금융시장 육성과 금융시장 규율이라는 충돌적 목표를 한 울타리 안에서 추구하는 구조다. 그러니 금융위가 '액셀'을 세게 밟을 때 금감원은 '브레이크'를 밟기 어렵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감원장 양 수장은 ‘혼연일체’를 외쳐온 터다. 그 구호 아래서 금감원은 정체성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결국 해답은 ‘금융감독의 독립성’이다. 그래야 골든타임에 경고음을 울릴 수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은 또 올 수 있다. 지난 2년여간 “빚 내서 집 사라”는 정부 정책으로 가계빚이 무섭게 늘 때도 경고음은 울리지 않았다.

류순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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