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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여의도광장서 열린 고교교련실기대회.
국가기록원 제공
영화나 개그프로에 심심찮게 나오는 치타 무늬 교련복. 군사문화 상징인 이 옷이 다양한 캐릭터로 깜짝 이미지 변신한 것을 보면 세상 참 별나다. 옷에 묻어 있던 거친 역사와 거부감은 사라지고 시대의 개성으로 흥미로운 코스프레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교련의 정신적 상처를 안고 있는 7080세대들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세태일 것이다. 그만큼 교련이 준 고통이 큰 탓이다.

고난의 시작은 1969년 1월9일부터다. 문교부가 이날 남자 고교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키로 확정 발표했다. 발단은 한 해 전 1월21일 일어난 ‘김신조 사건.’ 북한 무장공비 31명의 청와대 습격 시도 이후 안보위기를 대비한다는 명분이었다. 새 학기부터 당장 교련복을 마련해야 했다. 교련이 든 날은 아예 교련복을 입고 등교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일주일에 보통 2시간씩 짜여진 고교생 교련은 까까머리 영혼들엔 엄청난 시련이었다.

장교 출신 교련 선생님들은 무서웠다. 제식훈련, 총검술, 총기분해를 못하면 얼차려 코스가 기다렸다. 원산폭격이나 깍지끼고 엎드려뻗쳐 같은 군대식 체벌은 지긋지긋했다. 대학에 들어가면 훈련강도는 더 셌다. 입영훈련과 전방입소까지 했고, 교련수업을 거부하거나 땡땡이로 이수시간을 못 채우면 강제징집을 당했다.

획일화와 가혹의 족쇄가 됐던 교련은 1989년, 대학생부터 점진 폐지됐다. 이제는 씁쓸한 추억의 화석이 된 교련. 꿈과 열정이 넘치던 학창시절, 안보논리에 찌그러진 청춘은 누가 돌려줄까.

김규영 편집위원

△1953년 1월9일 창경호 침몰 229명 사망

△1863년 1월10일 런던지하철 세계 첫 개통

△1957년 1월11일 언론모임 관훈클럽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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