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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애독서] 광주의 그날… 불편하지만 치유해야 할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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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09 21:33:54 수정 : 2017-01-09 21: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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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첫 장을 넘겨 놓고도 몇 번이나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용기가 필요했다. 외면하고 싶은 트라우마를 부닥치는 건 힘들었지만 생생한 장면들과 집요한 묘사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중학교 3학년 동호는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수습하는 일을 돕는데, 그 시신들 사이에서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는 생각한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그날들을 겪은 동호의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의 삶도 끔찍하다.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하던 형과 누나들은 5·18 이후 경찰에 연행되어 고문을 받는다. 그들에게 살아가는 것은 치욕이며 결국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저녁때까지 들어가겠다’는 동호를 데리고 가지 못했던 어머니는 한탄한다. “그렇게 너를 영영 잃어 버렸다이. 인자 나는 암것도 알 수 없어야.”

이 책은 2인칭인 ‘너’를 서술의 주체로 삼고 있다. 마치 그 장소에 서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내가 책 속에 있는 듯이 쿡쿡 고통을 느끼면서 읽게 한다. 작가는 죽음에 집착하고 죽음조차 존중받지 못했던 그날의 참혹함을 보여준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생명을 훼손하고 존엄을 무너뜨리는 이들의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듯 생생하게 권력이 행하는 폭력을 드러낸다. 


저자 한강은 에필로그에서 이 작품을 쓰기 위해 2012년 겨울부터 3개월 동안 광주를 오갔고 취재를 통해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했다. 광주는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얼굴을 바꿔서 우리에게 계속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9일은 2014년 4월16일로부터 1000일째가 되는 날이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의 상임위원을 맡고 있는 나는 지난 7일 11차 촛불집회 직후 정원 스님의 분신 소식을 듣고 서울대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5·18이든 세월호든 우리에게는 지울 수 없는 흉터와 같다. 숨기고 싶고 불편하지만 그래도 기억하고 치유해야 할 고통이다. ‘이제 그만 잊자, 지겹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작가는 글을 쓰는 작업이 너무도 힘들었고 여러 차례 병까지 났다고 한다. 소설을 쓰는 이의 치열함과 인내가 놀랍다. 우리는 의도치 않게 역사의 한 장면에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걸 기억하고 증언해야 하는 책임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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