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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정경유착과 괘씸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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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11 01:08:56 수정 : 2017-01-11 01: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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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불위 권력 당해낼 기업 없어… 윗물부터 맑아야 1988년 12월14일, 당시 5공 청문회에 출석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말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전경련 회장이었던 그는 600여억원의 일해재단 기금 모집에 전경련이 앞장선 것을 두고 “정부의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하고 모든 것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시류에 따라 돈을 냈다”고 발언했다. 그는 “1차는 날아갈듯 내고 2차는 이치에 맞아서, 3차는 편하게 살려고 냈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그로부터 28년이 흐른 지난해 12월,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한 미르·K스포츠 재단 기부 논란으로 재계 총수 9명이 또다시 청문회장에 앉았다. 이번에는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정부의 요청을 기업이 거절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원하면서 대가를 바란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김기동 산업부장
기업이 피해자인지 공범인지를 가리자는 얘기는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특검 수사에서 대가성이 드러난다면 법대로 처벌하면 된다. 다만, 이번에도 재계가 정경유착이라는 ‘흑역사’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일해재단 청문회 이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나 세풍사건 때에도 정경유착을 끊겠다는 기업들의 약속이 있었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이유가 뭘까. 기업들이 ‘배임죄’만큼 무서워하는 건 서슬 퍼런 정권에 밉보이는 ‘괘씸죄’다. 아무리 깨끗한 기업도 권력의 요구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것처럼 통치자는 여전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1985년 해체된 국제그룹을 굳이 거론하지는 않더라도 각종 인허가권과 검찰, 공정위 등을 틀어쥔 정권은 가용할 실탄이 많다. 특정 기업을 소리 소문 없이 공중분해시키거나 CEO(최고경영자) 서너명을 날리는 건 일도 아니다.

성금(誠金)과 수금(收金)은 엄연히 다르다. 성금은 영어로 ‘Donation’이라는 의미다. 정성이 담긴 자발적 기부라는 얘기다. 반면, 수금은 강제성을 띤다. 미르·K재단 출연금이 자발적 성금이라는 정부 주장과 달리, 허창수 회장의 말은 강제성이 담겨있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전두환 정권 시절부터 지금까지 30여년이 흘렀지만 기업 ‘삥 뜯는’ 수금통치의 관행은 철옹성처럼 남아 있다. 기업들이 각종 명목으로 갖다바치는 준조세가 연간 20조원대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에서 기업을 하려면 주머니 두세 개는 차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하나는 권력자를 위한 보험용이고 또 하나는 세금이라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10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주말마다 광화문 등에서 촛불을 들고 대통령 하야를 외쳤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2항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국민들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아야 한다.

기업들이라고 잘한 것은 없다. ‘피해자 코스프레’에 의존해 국민들의 동정을 사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기업 스스로 투명한 회계관리와 합리적 경영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물론 통치권력이 국민이나 기업 위에 군림하는 갑질을 근절할 정치개혁이 선행돼야 겠지만 말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게 순리다. 그래도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김기동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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