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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황교안과 청탁금지법의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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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13 01:05:41 수정 : 2017-01-13 01: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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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선물값 상한선 손대는 순간, 법 엄격성 훼손돼 누더기 될 것 / 지킨 사람만 바보 만들어서야… 법치주의자가 왜 유리창 깨나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지난해 9월28일 시행되자 중국 신문이 시커멓게 제목을 뽑았다. ‘한국 사상 최강의 반부패법 시행, 공직자 182원(한국돈 3만원) 식사 초과 시 처벌’ 기사에 댓글이 수없이 달렸다. 죽 살펴보니 “한국 대단하다” “존경한다” “중국은 이거 안 배우나” “드디어 중국과 조선이 한국보다 못한 이유 밝혀졌네” 등 칭찬 일색이었다.

우리 국민 호응도 역시 뜨겁다. 시행 때 70% 지지를 보이더니 연말 여론조사에선 85%로 지지세가 더 강해졌다. 그래서인지 공영방송 KBS는 “화훼업과 유통업 타격이 불가피했으나 각자 내기 문화가 확산되고 부정 청탁 고리도 눈에 띄게 줄었다”며 “특히 공직자와 초중고 교사가 높은 호응도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이렇게 지지여론이 압도적이니 먼저 음식점들이 움직였다. 신문사 인근의 한 음식점은 9월 이전엔 점심 가격이 1인당 3만∼3만5000원이었다. 그땐 새까맣게 선팅한 대형 승용차를 탄 사람들만 가끔 출입했다. 청탁금지법 이후 이 음식점은 1만원대의 실비 메뉴를 내놓았는데 직장인들이 줄을 잇는다. 청탁금지법 이후 일자리가 줄었다고 아우성이다. 이 음식점의 경우 종업원이 종전보다 많아졌다. 이 음식점처럼 회사 주변의 비싼 음식점 여럿도 연말 전후로 밥값을 낮추는 대열에 합류했거나 하고 있다.

유통업 쪽도 속속 변신하고 있다. 설을 앞두고 선물가격대를 5만원 이하로 맞춘 저가형 상품을 대거 내놓았다. 한 유통업체는 전체 선물세트의 80%를, 한 백화점은 지난해보다 5만원 이하 선물세트 비중을 60% 정도 늘렸다고 한다. 우리 사회도 소액선물을 정성으로 주고받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상갓집의 조화, 승진 인사 축하난은 줄긴 했으나 낭비성은 여전하다. 과거 집안 상을 당해 백여개의 조화를 받은 경험에 비춰볼 때 조화를 늘어 놓는 것은 결코 고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상을 치르고 난 뒤 버릴 방법이 마땅치 않아 재처리해주는 병원 측이 고마울 정도였다. 승진 인사와 관혼상제는 그야말로 마음으로 축하하고 위로해주는 게 맞다. 난화분과 조화 많이 받은 것으로 위세를 표시하는 과시성과 전시성 관습은 사라질 때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청탁금지법상 식사(3만원) 선물(5만원) 경조사비(10만원)의 시행령 기준 조정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은 너무 느닷없다. 이후 정부 내에서 기준선을 5·10·10, 혹은 10·10·10까지 완화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소상공인의 피해 등 현실적 고통을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부패방지법의 속성으로 볼 때 법에 손을 대는 순간 누더기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누군가가 마당에 쓰레기를 버리고 건물 유리창을 깨면 너도나도 따라하게 된다. 황 대행이 공공연히 쓰레기를 버리고 유리창을 깨자고 나섰으니 법이 유명무실해질 일만 남았다. 사상 최강의 부패방지법에 반감을 품은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니 이곳저곳에 구멍을 뚫어 누더기로 만들 것이다.

청탁금지법 시행 초기 조심하던 기업과 대학, 언론 쪽 등은 최순실 파문을 거치면서 달라졌다. 골프와 식사 등에서 상한선을 지키지 않는 사례가 서서히 많아졌다. 어느덧 나사가 많이 풀린 게 사실이다. 황 대행은 이런 돈 많고 힘 센 사람들에게 얼씨구나 하고 어깨춤을 추게 해준 것이다. 법률은 지속성이 있어야 성과가 난다. 두세 달 뒤 법이 바뀌는데 누가 지키겠는가. 선량한 사람들만 바보 만들어선 그건 법치가 아니다. 법치주의자가 왜 유리창을 깨는지 묻게 된다.

청탁금지법 탄생은 난산이었다. 법무부가 오랜 시간 쥔 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그때 법무장관이던 황 대행은 대통령직을 대행하자 잘 굴러가는 청탁금지법에 다시 제동을 걸고 있다. 황 대행이 왜 이리 청탁금지법과 악연인지 궁금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청탁금지법을 우리 사회의 청렴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하겠다”며 시행령 상한선 논란을 일축했다. 지금 박 대통령이 아무리 욕을 먹어도 권한대행이 이를 뒤집을 권한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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