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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떴다방’ 된 한국 보수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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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17 21:45:59 수정 : 2017-01-17 21: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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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만 되면 이합집산… 뿌리 깊은 영국 본받아야 19세기 중반 영국의 보수당은 중흥의 계기를 맞는다. 벤저민 디즈레일리(1804∼1881)라는 명재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본래 전통과 엄격한 질서를 추구하는 전통 유태계 보수주의자였다. 하지만 고루하지 않은 유연한 사고방식의 정치인이었다.

여러 업적 가운데 ‘하나의 국민’은 가장 높이 평가받는다. 작가이자 정치인인 디즈레일리는 1845년 소설 ‘시빌, 혹은 두 개의 국민들’(Sybil, or the Two Nations)을 썼다. 하층민들의 가난과 사회적, 경제적 박탈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은 이후 쓴 소설이라고 했다. 서민층의 비참한 현실을 소설로 묘사해 국민들에게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소설에서 서로 아무런 소통이 없고 동정심도 없고 서로의 삶에 무지한 두 집단을 ‘두 개의 국민들’로 표현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그는 영국이 ‘두 개의 국민들’로 분열된 원인을 분석했다. 우선 지배 엘리트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무를 거부했거나 수행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부와 사회적 특권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수반한다고 믿었다. 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두 개의 국민들’을 ‘하나의 국민’으로 묶는 효과적인 복안이었다.

그는 곧 보수당을 대중복지의 당으로 변모시켜 나갔다. ‘두 개의 국민들’ 사이의 빈부 격차를 줄이고, 격차가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정책을 채택했다. 곡물법을 만들고 참정권을 확대하며 노조의 결성과 권리를 인정했다.

‘하나의 국민’ 전통은 1945년 이후 케인스주의와 복지국가 지향 정책으로 이어졌다. 영국 보수당은 특히 복지국가에 집착했다. 복지국가는 사회적 결속을 유지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다. 애초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추구하는 보수당은 이처럼 때때로 개혁적 방안을 선택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혁명이라는 과격한 수단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변화의 흐름을 수용해야 할 때 수용함으로써 ‘멍청한 당’에서 벗어나 성공적인 당을 건설해 20세기를 보수주의의 세기로 만들었다.

19∼20세기의 거센 사회주의 물결 속에서 영국 보수당은 장기간 집권할 수 있었다. 그들은 ‘국민의 당’을 내세우며 특정 계급이나 정파가 아닌 국민 전체에 호소했다. 그럼으로써 수권 정당의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해 왔다.

1830년대부터 하나의 당명으로 3세기에 걸쳐 왕성한 생명력을 이어가는 영국 보수당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 보수주의자들은 왜 낡고 고루하며 지루하다는 비판을 듣는가. 오로지 권력을 좇는 세력으로만 폄하되는가. 우리 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생겨나고 사라지곤 한다. 크고 작은 정당들은 단견과 헤쳐모여식 존재방식을 유지하곤 했다. 흔히 ‘떴다방’식의 정당 운영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 국민들 역시 보수주의가 무엇인지 보수 정당의 원칙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젊은층은 물론이고 나이 지긋한 장년층도 보수 하면 그저 고루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여권의 정치인들조차 경제 민주화에 대한 관심은 증가했지만, 여전히 보수적 가치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 여권에서 떨어져 나온 이른바 개혁보수 지향의 정치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영국은 우리와는 다른 역사와 제도, 가치관을 가진 나라다. 영국 보수당의 정치적 경험이 우리에게 교훈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채택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시작된 곳이라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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