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부는 황량한 겨울이다. 한눈에 봐도 따뜻해 보이는 풍성한 느낌의 털모자를 쓴 학생들만 간간이 지나다닌다. 멀리서 보니 추상화 작품처럼 보였다. 궁금해 천천히 다가서 보니 그냥 게시판이다. 서울의 한 대학 교정에 세워져 있는 게시판엔 그 흔한 알바 공고 하나 붙어 있지 않다. 무수히 많은 게시물들을 붙였다 떼었다 한 흔적들만 남아 있다. 거친 단면의 종이 파편들과 스테이플러 자국들이 까만색 배경과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겠지. 따스한 신학기 교정엔 또다시 학생들의 물오른 소리들로 가득 찰 것이다. 그맘때쯤이면 이 게시판도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리고 특강을 알리고 다시 무언가를 알리는 게시물들로 빼곡해질 것이다. 추상화가 구상화가 될 것이다.
이재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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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0002832010108010000002017-01-21 12:7:22017-01-21 12:6:20[렌즈로 보는 세상] 추상화 같은, 게시물의 파편세계일보허정호0028f8cc-c883-4815-9315-2c6633fff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