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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의월요일에읽는시] 달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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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22 21:06:40 수정 : 2017-01-22 21: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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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1966~ )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창을 닫았다.

어둠을 뒤집어쓴 채 생애라는 낯선 말을 되새김질하며 살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집은 조금씩 좁아졌다.

강해지기 위해 뭉쳐져야 했다.

물속에 가라앉은 태양이 다시 떠오를 때까지 있는 힘껏 외로움을 참아야 했다.

간혹 누군가 창을 두드릴 때마다 등이 가려웠지만.

방문(房門)을 연다고 다 방문(訪問)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위로가 되지 못하는 머리가 아팠다.

똑바로 누워 다리를 뻗었다.

사방이 열려 있었으나 나갈 마음은 없었다.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나는 아직 더 잠겨 있어야 했다.


김영남 시인
올해는 닭띠의 해다. 연초가 되면 닭의 생태적 특성과 덕성을 통해 1년의 운세를 점쳐보는 것이 동양인의 풍습이다. 또한 태어나는 아이의 미래를 띠로 예지하고 결혼할 때 상대방과의 궁합을 맞춰보기도 한다. 이렇게 주목 받는 띠 동물이 연말부터 수난의 연속이었다.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닭이 3000만마리 이상 살처분당하고 달걀 파동까지 일으켰다. 새해가 닭의 해가 아니라 달걀의 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온통 달걀에 관심도 집중되었다. 그만큼 올해의 띠 동물인 닭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연초부터 소외되지 않았나 싶다.

인용시는 그런 닭의 씨앗인 달걀의 생에 시인의 삶을 동일화하고 있다. 시인이 달걀이 되어 달걀의 몸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성찰한다. 마음 씀씀이가 하도 착하고 둥굴어 꼭 품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부화한 닭도 조류인플루엔자에 절대 걸리지 않으리라는 믿음이다. 강해지기 위해 외로움을 극복하며 스스로 내실을 다졌기에 내성도 충분하리라 여긴다. 착하고 끈덕진 작자의 마음 한 자락을 보는 듯하다.

김영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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