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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효 사상 계승하는 한국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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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01 21:41:17 수정 : 2017-02-01 21: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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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설 연휴 귀성전쟁이 막을 내렸다. 부모님이나 가족들을 찾아 인사를 드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는 행동은 유교의 기본 덕목인 ‘효’와 관련지을 수 있다. ‘효’는 신분질서에 따른 상하, 존비의 윤리로 단순히 부모를 섬기고 봉양하는 것만이 아니다. 신분에 따라, 직분에 따라 이상적으로 몸소 정진하는 것을 일컫는다. 유교의 영향으로 조상숭배, 남녀유별, 장유유서, 상하관계를 고려한 위계성이 반영되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상류주택과 정원의 구조에서도 신분에 따라 공간을 구분 짓는 특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 정원의 대표 격인 담양 소쇄원(명승 제40호·사진)의 공간구조는 이러한 위계성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소쇄원 48영에 나타나는 소쇄원의 모습은 가장 높은 단에 위치한 주인의 거처인 제월당과 화계, 손님들을 위한 공간인 광풍각, 주변에 위치한 계류와 석물, 수목 등이 하나의 영역을 형성하면서 영역의 주체를 배려한 공간구성요소를 도입하고 있다. 소쇄원의 조영자는 양산보(梁山甫, 1503∼1557)로 기묘사화(己卯士禍, 1519) 이후 세상에 뜻을 잃고 자신의 본가 일대에 은거하고자 정원을 조성한 데서 기원하였다.

양산보가 지은 ‘효부’는 천지만물 사이에서 인간이 생겨남과 모든 천륜의 근원이 부모로부터 비롯됨을 말하고 효도의 당연함을 노래한 것이었다.

한국 정원에 내재된 효의 사상은 후손들의 실천적 태도로도 나타난다. 소쇄원이 전란에 의해 소실되자 양천운 대에 중수를 시작하고 그의 손자인 양진태, 양택지 대에 이르러 과거의 정원 모습을 회복하였으며, 양경지는 소쇄원의 외원을 설정하는 등 조영 이래 2차례의 대규모 정원 조성사업과 1차례의 확장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양산보의 후손들 중 퇴락한 정원의 회복을 꾀한 인물은 입신양명한 인물들 위주였다. 소쇄원에 관련된 인물들의 가족사를 통해서도 한국의 효가 오롯이 계승되고 있었던 것이다. 소쇄원 이외에 대다수의 조선시대 별서정원에도 효와 관련된 정자명과 일화가 전해오고 있어 한국 정원의 효 사상을 일깨워준다.

이원호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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