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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층간소음과 딸기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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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03 20:54:45 수정 : 2017-02-03 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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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에서 올라왔어.”

회사에서 야근하다가 남편의 전화를 받고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그런데 뒤이어 들려온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김수미 산업부 차장
층간소음 때문에 올라온 아래층 여고생의 손에는 딸기 한 상자가 들려 있었다. 전화를 받는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친 풍경과 너무 달랐다. 그 여학생은 층간소음의 주범들(아이들)에게 “언니가 올해 고3이 됐어.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야 하니까 좀 조용히 해줄래?”라며 딸기를 건넸다.

자칫 어른끼리 얼굴 붉힐 것을 염려해 딸을 보내고 딸기까지 들려보낸 아래층 부부의 배려와, 한창 예민할 시기임에도 웃는 얼굴로 아이들과 직접 대화해준 수험생의 이해심에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이튿날 ‘아이들이 직접 사과하고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며 시부모님이 아이들과 딸기 케이크를 들고 아래층에 찾아가 “언니 미안해. 앞으로 시끄럽게 안 할게”라며 다짐하고 왔다. 지난해 이맘때 이사 왔을 때에도 우리는 딸기를 사서 아래층과 앞집에 인사를 갔다. 첫 아이를 낳자마자 이사했을 때는 백일떡을 보냈고, 그후로도 이사 다닐 때마다 늘 수박이나 빵 따위를 들고 이웃에 인사를 다녔다. 잠재적 층간소음 유발자로서 일종의 ‘자진 신고’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떡을 내려보내면 빵이 올라오고, 수박을 보내면 참외가 왔다. 미소와 덕담은 늘 보너스처럼 따라붙었다.

부동산 복은 없어도 이웃 복은 있나보다 남편과 안도하곤 했다. 명절에 만난 친척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아래층 입장인 그는 보복스피커 설치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보복스피커는 무선 블루투스 스피커를 이용해 위쪽으로만 소리가 올라가게 하는 방식으로 이웃의 소음에 대한 보복용으로 사용된다. 아래층인 친척이 위층에서 밤낮없이 쿵쿵대는 통에 참다 못해 경비실을 통해 몇 차례 이야기했더니 위층의 반응이 가관이었단다. ‘애가 뛰는데 어쩌라고’, ‘싸웠는데 어쩌라고’라며 경비실을 통해 따지더니, 이후부터는 소음 민원을 하면 망치로 바닥을 두둘겨 대답을 갈음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복이 많은가 싶지만, 딸기 이야기가 끝은 아니다. 그렇게 마무리됐다면 해피엔딩이었겠지만,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층 여학생은 또 올라왔다. 아이들에게 ‘뛰지마! 뛰지마! 아래층 언니 공부하잖아!’를 몇차례 반복한 후였다. 이번에도 여고생은 “나도 마음 같아선 뛰어놀라고 하고 싶은데….”라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지만, 내 눈에선 불꽃 광선이 나가고 있었다. 아래층 이웃이 정말 원하는 것은 인사도, 딸기도 아닌, 소음 없는 윗집일 것이다.

지금도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뛰거나 의자라도 질질 끌면, 신경이 곤두선다. 겨울방학 내내 집에서 공부해야 하는 수험생도, 놀이터에도 못 나가고 종일 ‘뛰지마’ 소리를 들어야 하는 아이들도 가여울 뿐이다. 층간소음은 배려와 인내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인상 한번 쓰지 않고 이웃과 인사하며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한다. 다만, 소음을 획기적으로 차단하는 신소재와 첨단 건축공법이 하루빨리 개발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김수미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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