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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박근혜정부 중용됐지만
소신 지키다 ‘배신자’ 낙인찍혀
권력 부당 지시에 ‘노(NO)’
‘영혼 있는’ 공무원의 숙명인가
벌써 4년 전이다. 2013년 2월14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가 장관 명단을 발표했다. 이날 TV를 통해 발표 장면을 지켜보던 문화부 직원들은 화면에 ‘문화부 장관 유진룡’이란 굵은 글씨가 뜨자 “와” 하며 환호했다. 그는 차관 시절 인기투표에서 1위 할 정도로 직원들이 따랐다. 1968년 문화공보부로 출범한 이후 문화부 출신의 첫 장관 발탁이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문화’를 19번 언급했다. “21세기는 문화가 국력인 시대”라고도 하며 문화부에 힘을 실어줬다. 그는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장관에 올랐다.

그러나 4년이 흐른 지금. 그가 이끈 문화부는 블랙리스트로 대표되는 문화농단 늪에 빠져 전·현직 장·차관 2명씩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다. 그가 아꼈던 간부들은 문화부를 떠난 지 오래다. 송수근 차관이 장관대행을 하지만 문화예술인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박태해 논설위원
문화농단은 ‘비선실세’ 최순실과 ‘문화계 황태자’로 불린 차은택 주도로 저질러졌다. 하지만 문화계에서는 유 장관의 권력과의 잦은 충돌도 영향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일부는 그가 취임할 때부터 앞날이 순탄치 않음을 우려했다고 한다. 정권 초기 수많은 ‘지시’가 불을 보듯 하지만, 부당한 명령은 ‘못 참는’ 그의 성격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8월 하순, 박 대통령은 그를 청와대로 불러 노태강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을 ‘나쁜 사람’으로 거론, 인사 조치를 요구했다. 두 사람은 최순실 딸 정유라와 관련된 승마협회 감사를 맡았으나 ‘원하는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그는 “대통령이 과장급 인사까지 관여하는 것은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직언’했다. 세월호 사고 직후에는 “국무위원은 전원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고, 대통령이 해양경찰청 해체를 발표하자 “재고하라”고 했다. ‘눈치 없는’ 소신을 이어가다 결국 후임이 없는 상태로 면직됐다. 잘린 뒤에도 “정부가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며 블랙리스트 실체를 폭로했다.

이를 두고 ‘참여정부 데자뷔’라 하는 이도 있다. 노무현정부 때인 2006년 당시 차관이던 그는 청와대의 아리랑TV 부사장 인사청탁을 거절했다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으로부터 “배 째 달라는 말씀이죠”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른바 ‘배 째라 소동’이다. 6개월 만에 잘렸다. 당시 정부와 갈등관계이던 언론은 그를 ‘영혼이 있는 공무원’으로 치켜세웠다.

김대중정부에서도 일화가 있다. 2000년 박지원 문화부 장관 시절 그는 대변인이었다. 그때는 문화부가 정부홍보를 맡았는데 장관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장관이 그에게 “당신은 충성심이 부족하다”고 질책했다. 발끈한 그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이야기하는 것이면 수용하지만 정권 충성심을 말하면 못 받아들이겠다”고 받아쳤다. 위기였다. 그러나 박 장관이 그의 ‘바른 말’을 수용했다. 지금은 국민의당 대표인 박지원은 그가 장관에서 잘린 다음날 “유진룡, 당신은 문화부 자랑”이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그 시절, 그가 어떤 ‘선수’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를 주변에서는 어떻게 평가할까. 그를 싫어하는 이들은 ‘배신자’, ‘기회주의자’로 몰아세운다. 한 문화계 인사는 “자신을 발탁해 준 정권마다 총질을 해댔다. 지금도 힘 빠진 정권을 밟고 ‘영웅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문화계 다수는 그의 우군인 듯하다. 문화부 국장을 지낸 한 인사는 “그는 정권의 불의한 지시가 있을 때마다 고난을 감수하면서 소신을 지킨 공직자의 표상”이라고 평가했다. “정권홍보(김대중정부), 낙하산인사(노무현정부), 부당인사·블랙리스트 거부·폭로(현 정부) 등 3대 정권에서 보인 그의 처신은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장관에서 잘린 뒤 그는 “(후배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가 몇달 전 쫓겨난 간부들과 선술집에서 만났다. 그와 일행은 만취해 ‘미워하지 않으리’를 목청껏 불렀다는 얘기를 최근 들었다. ‘두고 온 고향’이나 다름없는 문화부가 쑥대밭이 된 지금, 그도 마음이 편할 리가 있겠는가.

박태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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