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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 결혼식장에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 다시 ‘취업준비생’이 됐다며 한 말이다. 2년 계약직으로 수도권의 한 사립대학교 교직원으로 일했던 그는 최근 계약이 끝나 고향 집에 내려와 있다고 전했다. 이번이 두 번째 계약직 근무였고, 두 번 모두 정규직 전환 없이 계약은 만료됐다. 대학은 매번 그 빈자리에 새로운 비정규직 청년을 앉혔다. ‘티슈인턴’은 그렇게 휴지처럼 버려졌고, 휴지를 갈아치우듯 쉽게 대체됐다. 반면 해당 부서에서 정규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도 경력 많은 오래된 직원 한두 명에 불과해 신입 직원, 청년 채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1∼2년짜리 비정규직을 수차례 전전해 온 친구가 담담하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모습은 다소 충격이었다. 정규직 전환이 힘들다, 계약직 채용만 너무 많다는 등의 얘기를 모르던 바는 아니었다. 다만 ‘티슈인턴’이 몸소 겪은 경험담을 직접 들으니 그 심각성이 더욱 와닿았고, 이들의 수용적인 태도와 자조는 그보다 더 씁쓸했다. 친구에 따르면 현장에서는 계약직들 사이에 ‘애초에 정직원 전환은 기대도 안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지 오래라는 것이다.
현실은 이런데 막상 청년인턴제, 장그래법, 청년지원금, 해외취업 등 관련 정책은 정권마다, 매년 붕어빵처럼 쏟아지고 영양가 없이 변형·폐기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떨어질 줄을 모르고 정책과 현실의 괴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당사자인 청년들이 체감 가능하고, 채용 현장에서도 현실화될 만한 청년실업 대책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위 사례에서 보듯, 대학교 교직원만 해도 2년 미만의 계약직 ‘미생’들만 계속 뽑아 ‘비정규직 백화점’이란 오명을 수년째 못 벗고 있음에도 성토하는 목소리에 비해 개선의 움직임은 요원하다. 채용시장 전체로 보면 이러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정지혜 산업부 기자 |
그러다보니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하기보다 체념하고, ‘기-승-전-헬조선론’이나 ‘금수저·흙수저론’ 등을 체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진 청년 세대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고 했다간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는 일갈을 듣게 되는 시대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섣부른 위로나 희망고문도, 실현 가능성 없는 비슷비슷한 실업대책들도 이제 지긋지긋해진 게 틀림없다. 이토록 무기력해진 청년 취준생을 일으켜 줄 정책은 언제쯤 등장할까. 어디서부터 뜯어고쳐야 할까.
정지혜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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