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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설마가 화마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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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14 00:37:00 수정 : 2017-02-14 00: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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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경기 화성의 동탄 신도시에 있는 초고층 주상복합단지 메타폴리스의 부속상가 건물에 불이 나 4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상가 안에 있던 47명이 유독가스를 마셔 치료를 받았고, 많은 주민들도 급히 대피해야 했다. 우선 이번 화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시사점이 있다. 먼저 264㎡라는 좁은 공간에서 발생한 화재치고는 인명피해가 컸다. 초고층 주거용 건물의 부속상가에 난 불로 주민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이 매우 컸음도 간과할 수 없다.

아직 현장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화재의 원인에 대해 살펴보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인테리어를 위해 쉽게 불에 타며 많은 유독가스를 내뿜는 가연성 자재를 썼고, 민원발생을 우려해 오염된 공기와 화재 등 유사시 연기를 밖으로 배출시켜주는 환기시설을 작동시키지 않았다. 또 철재 구조물 가스절단 작업 중에 혹시 작동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프링클러 등 소방 설비를 무력화시켰다. 이번 화재는 2년 전 고양 터미널 상가에서 발생한 화재사고와 너무나 닮은꼴이다. 당시 사고는 가스배관 공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작업자들이 가스가 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용접작업을 하다가 불씨가 천장의 가연성 소재에 옮아 붙으며 발생했다. 또 초기 진화에 필수적인 스프링클러엔 물이 차있지 않았고, 지하층 전원이 차단돼 소방 설비가 작동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 화재를 감지해 알리는 장치는 수동으로 전환돼 경보발령과 대피방송도 늦었다.

이태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원장
그렇다면 이와 같이 어처구니없는 불행한 화재사고는 왜 반복돼 일어나는 걸까. 무엇보다 우리 주위에 만연돼 있는 안전 불감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장 작업자와 시설 관리자의 부주의만을 탓하는 게 아니다. 값이 싸면서 보기에는 좋지만 화재에 매우 취약한 소재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번 사고를 부른 어린이 놀이시설은 물론 건축 내외장재 등 각종 자재들이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마 내 집에, 당장 여기에 불이 나랴 하는 안이한 생각에 나와 가족의 소중한 생명을 화마에 빼앗길 수 있다.

이어 획일적이고 분산된 화재안전 관리체계도 문제다. 요즘 건물과 시설들은 더욱 높아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정부 규제가 모든 상황을 예상해 제도에 반영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화재 예방시설과 소방시설은 상호 보완관계에 있다. 이에 분야별로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기보다 현장 여건에 맞는 적합한 시설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다음으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에 지금의 소방시설은 다분히 수동적이다. 짙은 연기와 화염 속에서 위험에 빠져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헤매는 조난자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고 길을 안내해주는 기술이 턱없이 부족하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화재현장이 주는 소중한 교훈을 외면하고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화재의 직접 원인을 밝혀 범인을 찾는 데 주력한다. 하지만 화재사고의 배경에는 화염과 연기가 통제되지 않지만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근본 원인이 있는 게 다반사다. 덴마크 등 선진국에서는 민간 전문가가 화재조사 과정에 같이 참여하고, 얻은 결과는 재발방지를 위해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반복적이고 같은 유형의 화재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지름길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불의의 화재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이태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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