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연구기관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A연구소의 B박사는 현 정부 출범 이후 한동안 언론 접촉 활동을 제한당했다. 그가 속한 기관장은 그에게 근무시간 내에는 방송 출연을 포함한 언론 활동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는 종종 밤 10시 이후 늦은 시간대에 진행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TV 토론 프로그램에만 존재를 드러냈다. B박사는 정부 정책을 비판할 때는 북한의 잘못된 행태를 더 강하게 꾸짖거나 정부 정책의 장점도 함께 거론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자기검열’을 했다.
김민서 외교안보부 차장 |
정부 성향에 따라 대북·통일 정책은 급격한 방향 선회가 이뤄졌다. 과거 정부의 정책 결정·집행 과정에 참여했거나 정책 구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 전문가들에겐 정치적 ‘딱지’가 붙었다. ‘실세’라는 수식어와 함께였던 이들일수록 더할 것이다. 지속적이고 일관된 대북·통일 정책, 초당적 외교·안보 정책은 교과서나 남의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정부도, 언론도, 전문가들도 외교·안보 정책만큼은 초당적 협력을 하고 중지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실현 가능성을 믿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실제 그런 ‘초현실적인 현상’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현재 우리가 처한 외교·안보 환경은 어느 한쪽의 지력(智力)만으로는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고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생각이 다른 쪽과 협력해야 할 것이다. 생각이 다르다고, 다른 편에 섰다는 이유로 전문가 줄세우기를 하고 편을 가르거나 각종 연구·자문 기회에서 배제시키는 구태는 이제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다.
김민서 외교안보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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