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국민통합’이란 원대한 이상을 품고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취임한 뒤에는 냉정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상과 현실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 성공과 좌절이 ‘후보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을 상징하고 있다. 후보 노무현 시절엔 문재인(2002년 대선 때 부산 선대본부장을 맡았다)보다 안희정이 가까이 있었다. 대통령 노무현 시절엔 문재인이 곁을 지키고 있었고 안희정은 불법대선자금 사건을 계기로 떨어져 있었다. 그런 문재인에게서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후보 노무현의 냄새가 나고, 그런 안희정에게선 후보 노무현이 아닌 대통령 노무현의 모습이 보인다. 노무현에게 선택하라면 문재인과 안희정 중 누구일까.
김기홍 논설위원 |
대통령 후보와 대통령은 다르다. 노무현은 대선 운동기간에 “반미면 또 어떠냐?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 “사진 찍기 위해 미국 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보수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진보진영에게서 ‘배신자’ 소리를 들었다. 첫 미국 방문 때 “53년 전 미국이 우리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지금쯤 혹시 정치범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100% 국익 기준으로 하라. 우리가 이익이 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하는 거다”는 ‘장사꾼 논리’로 한·미 FTA를 추진했고, 이라크 파병을 강행했고, 제주해군기지의 초석을 놓았다. 그는 “야당 정치인 시절과 대통령이 된 지금은 말과 사고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안희정의 지지율 합계가 절반이 넘는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문재인이든 안희정이든 다음 정부는 ‘민주당 정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의석수는 121석이고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8석을 합쳐도 173석에 그친다. 바른정당 32석을 끌어들여야 5분의 3인 180석을 넘기지만 자유한국당(94석)이 버티면 현실 정치는 파행이다. 국정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려면 여야 진보가 같이 가야 한다. 서로 인정하고 대화하고 설득하고 타협해야 한다. 정치는 용광로가 되어야지 원심분리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할 수 없는 일들로 국회, 야당, 여당, 언론, 이익집단, 시민사회, 민심, 권력기관, 관료조직, 국제관계를 꼽았다.(노무현의 성공과 좌절)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슈퍼맨이 아니다. 문재인과 안희정, 그리고 찬반 세력은 노무현의 성공과 좌절에서 배워야 한다. 대선주자들에겐 ‘대통령 후보’보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국민에겐 대통령을 뽑는 것 못지않게 박수받으며 물러나는 대통령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문재인의 진심, 안희정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지만 그 진심을 곡해하지 않도록 이해시키는 노력도 해야 한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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