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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앞으로 다가온 운명의 시간
명예퇴진론, 버리기 아까운 카드
잘못 인정하면 대승적 논의 해볼 만
닉슨처럼 지고도 이기는 게임 해야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도 벼랑 끝까지 버텼다. ‘워터게이트’가 터진 뒤 식물대통령이 되고도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며 은폐에 급급해하고 검찰 수사도 면책 특권을 내세워 방해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동소이하다. “나는 한 푼도 챙기지 않았다”며 특검조사를 거부하고 헌법재판소를 뒷골목 싸움터로 만들며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다하는 것도 닮았다.

닉슨이 2년여의 거친 싸움을 포기한 것은 대법원의 8대 0 판결이 결정적이었다. 닉슨은 최소 대법관 한두 명 정도가 자신 편에 설 것으로 기대했지만 대법원은 전원일치로 증거인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고 판결했다. 닉슨은 보름 뒤인 1974년 8월8일 밤 사임 연설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가족도 한결같이 그렇게 하라고 권했다.” 닉슨은 그렇게 말한 뒤 “그러나 국익은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말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박 대통령의 처지는 닉슨보다 딱하다. 참모의 통화내역과 수첩에서 증거가 쏟아지고, 부하들이 입을 맞춘 듯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다. 국민 여론은 10명 중 거의 8명이 탄핵 인용을, 비슷한 수치가 사법처리를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미 많은 국민의 시선이 탄핵 이슈를 넘어 조기 대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간의 수레바퀴를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요행수를 바라면 몰라도 박 대통령에게 유리한 단서는 찾기가 어렵다.

헌재가 잡은 변론 일정상 결말까지는 2주 정도 남았다. 이대로 가면 내달 10일 쯤 선고 후 대충돌밖에 없다. 박 대통령 법률대리인 김평우 변호사는 법정에서 “(헌재가 공정하지 못하므로 탄핵을 인용하면) 내란이 일어나고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라며 나라의 앞날을 저주했다. 발언의 적절성을 떠나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보수나 진보 진영 모두가 증오심으로 독이 올라 있다. 탄핵되면 아스팔트우파가 분노의 불길을 키울 것이고, 기각되면 촛불세력이 광화문광장을 점령할 것이다. 대선 정국이 겹쳐지면서 해방 이후 좌우진영의 격돌처럼 나라꼴이 말이 아니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치킨게임을 할 때 파국을 면하는 방법이 있다. 누군가가 마주 보고 달리는 자동차의 핸들을 먼저 꺾고 뛰어내려야 한다. 핸들을 꺾으려면 지금이 타이밍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에서 흘러나오는 ‘명예퇴진론’은 파국을 막는 차원에서 버리기 아까운 카드다. 박 대통령의 개인적 불행을 최소화하면서 나라의 혼란을 막아보자는, 거창하게 말하면 국민통합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이 있다. 숨겨진 정치적 꼼수가 왜 없겠느냐마는 선의로 보면 논의하지 못할 일도 없다.

두 개의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먼저 헌재가 기각하고 박 대통령이 사임하는 방식이다. 청와대에서 바라는 최상의 카드이지만 실효성이 문제다. 헌법재판소가 정치 협상에 응할 리 만무하다. 두 번째는 박 대통령이 자진 하야를 발표하고 정치적 합의로 사법처리를 면제하는 방안이다. 박 대통령은 퇴임 후 연금과 전직 대통령 특혜를 받으며 삼성동 사저에서 은거하며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실현이 되기 위해선 박 대통령의 잘못 인정, 진솔한 사과가 전제돼야 하고 정치권의 대승적 논의가 필요하다. 헌재가 헌법적으로 수용한다면 현실성 높은 방안이다.

악어의 눈물일지언정 닉슨은 ‘국익’을 명분 삼아 사퇴한 뒤 캘리포니아주의 사유지에 은둔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 되는 치욕을 면하고 시간이 흘러 생전에 재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엔 진 게임이지만 나중에 보니 지고도 이긴 게임이었다.

박 대통령은 닉슨과 같은 길을 갈 것인가. 그렇다면 늦어도 내달 초쯤 이런 성명서를 발표하면 좋을 것이다. “가시밭길이 펼쳐진다 해도 끝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국익을 위해 조건 없이 사임합니다. 국익은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탄핵된 나라는 남미 등 몇 나라밖에 없다. 대한민국 정치가 남미 수준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운명의 시간이 재깍거리며 다가오고 있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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