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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일·가정 양립제도’ 해법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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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27 02:17:10 수정 : 2017-04-11 14: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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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어릴 때 미안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1980년대 두 아이를 키운 김혜숙씨는 현재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30년 전 일에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지난주 시리즈로 보도한 ‘육아휴직 실태 리포트’를 준비하면서 인터뷰한 ‘엄마 세대’ 여성 중 한 명이다. 김씨는 자녀의 영유아 시기에 여러 사람의 손을 빌렸고 초등학교 때는 부모 없는 집에서 아이들이 ‘알아서’ 놀게 했다.

이현미 사회부 기자
“난 어렸을 때 외로움밖에 몰랐다고요!”

수화기 너머로 장성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쟤가 지금까지 저 말을 해요.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몰라. 가난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그렇게 안 키웠지.” 김씨는 “국가에서 아이를 봐주겠다고 나서는 요즘은 아이 키우기 좋은 천국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그 천국에 사는 최성은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초등학생인 첫째아이(9)는 방과 후 학원을 전전하고 둘째(3)는 어린이집과 베이비시터에게 맡겨졌다. 촘촘히 엮어놓은 ‘육아의 고리’ 중 언제든 하나가 끊어질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가장 큰 답답함은 ‘이러려고(남의 손에 맡기려고) 아이 낳았나’ 하는 죄책감이 들러붙어 괴롭히는 것이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맞벌이 여성의 괴로움은 달라지지 않았다. 국가에서 지난 10년간 보육시설에 수십조원을 쏟아부은 덕에 어린이집이라는 선택지가 생겼지만 엄마의 퇴근 때까지 맡겨두기 어려운 실정이다. 설령 종일 보육이 가능하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부모 품보다 작은 ‘사랑의 품’에 아이를 맡긴 미안함에 짓눌려 지내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와 전문가들은 모두 “일을 하더라도 내 손으로 내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마침 차기 대선후보들의 양육 공약은 ‘육아휴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새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하는 이들의 처방은 기존 제도의 기간·지원금을 늘리는 수준이다. 비정규직이 흔한 시대에 육아휴직제도 자체를 이용하기 어려운 이들의 처지를 개선해주겠다고 이야기하는 후보가 거의 없다.

현재 육아휴직 등 일·가정 양립 제도의 급여는 고용보험에서 나와 보험 가입자가 아니면 혜택 자체를 받을 수 없다. 고용이 불안정한 신분인 것도 모자라 자녀 양육을 위한 국가 지원망에서도 배제돼 있는 셈이다. 대선후보들의 공약대로 ‘육아휴직 기간 확대’ ‘육아휴직 의무화’를 이루면 정규직, 비정규직의 격차가 더 커지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또 고용보험에 묶여 있는 제도 개선 없이는 ‘육아휴직 의무화’조차 불가능해진다. 모든 근로자의 육아휴직을 받쳐주기에는 고용보험기금의 체구가 너무 허약한 탓이다.

따라서 일·가정 양립 제도를 시대적 과제로 여긴다면 제도 밖의 수많은 사람에게도 눈을 돌려야 한다. “‘사내 눈칫법’에 걸린 정규직 근로자가 아니라 가장 소외된 이들의 처우 개선에 집중하는 것은 전체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한 어느 전문가의 말이 맴돈다. 지금부터라도 각 대선 캠프는 공약집에 담길 비정규직 대책에 이들의 자녀 양육 문제를 고민하고 정교한 해법을 담기 바란다.

이현미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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