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苦에서 깨달음으로… ‘해탈의 여정’ 노래하다

입력 : 2017-02-28 21:17:46 수정 : 2017-02-28 21: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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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가타·테리가타’ 국내 첫 완역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장
늙은 자, 비참한 병든 자를 보고 수명이 다한 죽은 자를 보았으니, 그것들을 나는 멀리 여의고, 즐길 만한 감각적 쾌락을 버리고 출가했다


“처소에서 내려와서 나는 시내로 탁발하러 들어왔다. 음식을 먹고 있는 나병환자를 보고 공손히 그의 곁에 다가섰다. 문드러진 손으로 그는, 나에게 그의 음식의 일부를 건넸다. 음식의 일부를 발우에 던질 때 그의 손가락도 그곳에 떨어졌다.”

석가모니 수제자의 한 명으로 유명한 ‘마하가섭’(摩訶迦葉·마하 깟싸빠)의 시구 중 한 대목이다. 한센인에게 보시를 받는 순간을 표현한 시구에는 마하가섭의 인간애와 자비심이 묻어난다. 완고한 고행주의자로 알려진 그는 사실 속깊은 자애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마하가섭은 석가모니의 멸도(사망) 이후 가르침을 주도한 영특한 제자였다.

석가모니 당대에 썼던 빠알리어 게송을 우리말로 완역한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회장. 그는 “테라가타와 테리가타를 보면 석가모니 첫 제자들의 깨달음의 순간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다”고 말한다.
연합뉴스
석가모니가 살아 있을 당시 첫 제자들의 깨달음을 시로 풀어쓴 경전을 직역한 ‘테라가타-장로게경’과 ‘테리가타-장로니게경’ 2권이 국내 최초로 번역·출간됐다.

테라가타는 석가의 초기 제자 비구들의 게송(偈頌)을, 테리가타는 비구니들의 게송 등을 기록한 책이다. 두 책은 부처의 가르침을 찬탄하는 게송과 수련 과정의 오도송, 인연담을 포함한 주석이 완역된 것이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나오는 장로는 구족계를 받은 지 10년이 넘은 비구를, 장로니는 비구니를 일컫는다. 

두 책을 완역한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회장은 “부처님 제자들의 삶의 스토리가 모두 담긴 책”이라며 “당대의 비구와 비구니들이 어떤 계기로 출가를 결심하고 어떤 고난을 겪었으며 어떻게 좌절을 극복했는지가 기록돼 있다”고 풀이했다. 이어 “부처님의 그늘에 가려진 부처 제자들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면서 “특히 부처님 열반 후 경전 결집을 주도했던 마하가섭은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원칙주의자로 알려졌지만 테라가타에서는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테라가타’는 260여 명의 비구가 읊은 총 21장 1291수의 시구로 구성돼 있다. 비구니 100여 명이 읊은 16장 522수가 담긴 ‘테리가타’는 여성 수행자들의 게송과 오도송, 그리고 주석을 함께 달았다. 수많은 불교 경전 가운데서도 비구니들의 노래만을 담은 경전은 극히 드물다.

전 회장은 “테리가타는 당시 여성들이 감당해야 했던 질곡의 삶과 수행과정이 담겨 있다”며 “여성 철학자들이 남성들과 당당히 깨달음을 논하고 이를 시 형식을 빌려 기록한 최초의 철학서이자 당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역사서”라고 소개했다.

이를테면 끼사 고따미라는 비구니는 ‘테리가타’에서 “연약한 여자들이 목을 자르고, 독약을 복용하기도 한다. 살모(殺母)의 아이가 모태로 들어가면, 둘 다 죽음을 겪기도 한다”며 당대 여인들이 처한 고통을 시구로 묘사했다. 비구니 비자야는 “마음의 적멸(寂滅)을 얻지 못하고, 네 번인지 다섯 번인지 나는 승원을 뛰쳐나왔었다”라고 고백한다. 이어 그런 난관을 극복하면서 “희열과 행복이 나의 몸에 스며들었다. 어둠의 다발이 부수어졌다”고 깨달음의 순간을 노래했다. 석가모니 당대 남성 출가자들의 출가 동기도 엿볼 수 있다. 장로 ‘아누룻다’가 읊은 게송의 한 대목이다.

“감미롭고 즐거운 다양한 감각적 쾌락이 여러 가지 형색으로 마음을 교란시키니, 감각적 쾌락과 욕망의 대상에서 위험을 보고, 왕이여, 나는 그 때문에 출가했다. 늙은 자, 비참한 병든 자를 보고 수명이 다한 죽은 자를 보았으니, 그것들을 나는 멀리 여의고, 즐길 만한 감각적 쾌락을 버리고 출가했다.”

전 회장은 “책을 통해 인생의 고(苦)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몸부림과 치열한 수행으로 열반을 성취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며 “약 2500년 전 수행자들의 진솔한 시가 깊은 감동을 준다”고 전했다. 전 회장은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독일 본 대학에서 인도학 및 티베트학을 공부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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