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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회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작품상이 번복되는 해프닝을 벌이며 흑인 감독 배리 젠킨스의 ‘문라이트’가 오스카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사상 최초로 남녀조연상에 흑인 배우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오스카’라 불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백인 위주로 수상작이 결정되는 그야말로 백인들의 잔치다. 아카데미 위원들은 지난 89년 동안 지나칠 정도로 보수적인 평가를 해왔다. 흑인이 수상한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급기야 지난해는 흑인 배우들이 “백합처럼 흰 오스카를 지지할 수 없다”며 시상식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만큼 유색인종에게 오스카는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과도 같다. 그러나 남우조연상을 통해 미국 영화 역사상 최초의 흑인 무슬림 배우가 오스카상을 수상하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

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작품성에 중점을 둔 것도 새로운 변화다. 전통적으로 아카데미는 상업성을 강조하지만 올해는 작품성을 높이 평가했다. ‘문라이트’는 흑인이자 동성애자인 주인공 샤이론이 지독한 가난과 사회적 편견에 맞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젠킨스 감독의 감각적인 촬영과 편집, 강렬한 음악과 신비로운 조명은 영화를 시(詩)의 경지로 올려놨다. 또한 동성애, 마약중독자, 저소득층을 통해 미국 사회의 폐부를 드러내며 심도 깊은 주제의식을 보여줬다. 성장기별로 샤이론 역을 맡은 각기 다른 세 배우는 첫 경험과 정체성의 혼란, 고독과 방황을 슬픈 눈빛의 내면 연기로 세밀하게 표현했다. 주류 상업영화를 평가하는 오스카에서 비주류 저예산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결과다.

유독 정치색이 강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전부터 메릴 스트립을 비롯한 할리우드 배우들은 그의 반이민정책과 언론정책을 비난해 왔다. 시상식이 시작되자 배우들은 파란 리본으로 반트럼프 의지를 표명했고, 진행을 맡은 지미 키멀은 초반부터 “트럼프 대통령께 감사드린다. 작년에 오스카상이 인종차별적으로 보였던 것 기억하느냐? 그게 올해는 사라졌다. 모두 트럼프 덕분”이라고 비꼬았다. 영화 ‘세일즈맨’으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이란의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은 트럼프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불참했고 후보에 오른 다른 감독들도 트럼프의 이민정책을 비난했다. 이번 오스카 시상식은 역대 어느 시상식보다 가장 정치적이었으며 작품상을 받은 ‘문라이트’ 또한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 시상식이 정치적인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영화는 여론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매체여서 정치와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영화 시상식이 지나치게 정치적인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영화가 양산되거나 작품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해 그 나라 영화산업은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작품성과 다양성을 강조하고 또한 유색인종에게 공평한 수상의 기회를 줬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영화 시상식이 정치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시사점을 우리에게 준다.

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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