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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의창] 시대를 앞서간 신사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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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08 01:06:57 수정 : 2017-04-11 15: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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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종지도 굴레 벗고 재능 활짝 꽃피워 / 성차별 극복한 여성선구자 관심 가져야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을 기념하는 날로 1975년부터 매년 3월 8일 유엔에 의해 공식 지정됐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 이념이 시대를 지배하면서 남성보다도 여성들은 사회 전 분야에서 많은 차별을 받았다. 능력이 있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버지, 남편, 자식에 대한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따르며 조용히 생을 마친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조선의 대표적인 여성상으로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인식하고 있는 신사임당(1504~1551)은 실상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꽃피운 여성이었다.

신사임당은 1504년 강원도 강릉 북평촌에서 아버지 신명화와 어머니 용인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사임당은 당호로서 중국 고대 주(周)나라의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본받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어릴 때부터 경전에 통달하고 글을 잘 지었으며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고, 또 바느질에 능해 수놓은 것까지도 정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안견의 산수화를 보면서 모방해 그렸고, 풀벌레와 포도를 그리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오늘날 사임당은 율곡 이이를 낳은 어머니의 관점에서 주로 기억되지만, 사임당 생존 때나 사후 가까운 시대를 살았던 16세기 지식인들에게 그녀는 어머니나 부인이 아닌 화가 ‘신씨(申氏)’였다. 특히 산수도와 포도, 풀벌레를 잘 그린 화가로 그 명성이 자자했다.

조선후기의 문신 송상기가 쓴 ‘사임당화첩’ 발문에는 “이 화첩을 보니 꽃과 오이 등의 여러 물건이 하나하나 정밀하고 오묘하게 표현되었다. 벌레나 나비 등은 더욱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니 붓으로 그린 물건 같지가 않다. 이에 집안 사람이 소장하고 있던 그림도 이와 같았을 것이며, 내가 그에게서 들은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만큼 사임당의 예술적 자질이 후대에까지 높은 평가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사임당은 글씨에도 자질을 보여, 지금까지도 해서(楷書) 1폭, 초서(草書) 6폭, 전서(篆書) 2폭이 전해 온다.

사임당의 이미지는 그녀 사후 100여 년이 지난 17세기 후반부터 점차 변화하면서 ‘신부인(申夫人)’이나, ‘이공(李公) 부인’으로 호칭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은 조선후기 정치가이자 학자인 송시열이었다. 이이의 제자인 김장생의 학문을 계승한 서인의 영수 송시열은 사임당의 예술적 자질보다는 이이의 어머니인 그녀의 여성성과 모성상을 강조했다. 이러한 흐름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최근까지 이어졌고, 사임당은 현모양처의 전형적인 조선 여성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사임당 이외에도 허균의 누이로 그 시가 중국에까지 알려진 천재 시인 허난설헌이나, 기생의 신분이었지만 탁월한 학문적 재능을 지녔던 황진이 등도 시대의 한계에 맞선 여성들이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 역사 속에서도 시대의 한계에 맞서 자신의 삶을 개척한 선구적인 여성들의 모습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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