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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수입된 올레길서 ‘일본의 속살’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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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09 20:49:45 수정 : 2017-03-09 20: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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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규슈올레’ 개척한 규슈관광추진기구 이유미 주임 “문화와 이야기, 그리고 사람은 모두 ‘길’로 이어지죠.”

일본 본토 남단 규슈(九州)의 외진 길만 찾아 3000㎞ 이상 걸어온 사단법인 규슈관광추진기구 해외유치추진부 이유미(38) 주임의 말이다. 그는 지난 6년간 규슈 곳곳의 풀길, 돌길, 산길을 걸으면서 길의 의미를 되새기게 됐다. 해외유치추진부의 유일한 한국인인 이 주임은 일본에 한국의 길과 정신이 담긴 ‘올레’를 전파한 전도사다.

규슈관광추진기구 해외유치추진부 이유미 주임(왼쪽 세 번째)이 지난달 19일 일본 규슈 후쿠오카현에서 열린 ‘규슈올레’ 미야마·기요미즈야마 코스 개장식에서 올레길 팬인 일본인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규슈관광추진기구 해외유치추진부 제공
최근 이 주임을 오이타현 오쿠분고 올레길에서 만났다. 그는 평소보다 천천히 걷길 권유했다. 올레는 등산이 아니라는 그의 지적에 심박수를 낮추고 호흡을 깊게 하며 걸었다. 아무렇게나 자란 풀 한 포기도 눈에 들어올 만큼. 숨이 차지 않아도 중간에 멈춰 서서 쉬었다. 말 그대로 ‘놀멍, 쉬멍, 걸으멍’ 하다 보니 이 길 너머에 도착했다. “자 어떠세요 올레 정신이 느껴지시나요?” 그의 말에서 자신이 개척한 규슈 올레길에 대한 확신과 제주 올레 정신에 대한 자부심이 동시에 느껴졌다.

올레길은 처음과 끝이 분명하지 않은 길이다. 시작점과 목적지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목표가 없으니 부담도 작다. 이 주임은 올레를 점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점과 점을 잇는 선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걷는 과정에서 오는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다. 지금껏 어딘가 도달하기 위해 수만 가지 길을 걸어왔지만 걷는 행위에 이토록 집중해본 적이 있었던가.

규슈를 찾는 한국인들 역시 올레길을 통해 점의 여행이 아닌 선의 여행을 즐기다 갔으면 좋겠다고 이 주임은 말했다.

“규슈올레가 없었을 때 규슈관광은 ‘점’의 여행이었다. 후쿠오카에 도착해 아소산을 찍고 벳푸를 방문하는 식의 ‘골든 루트’ 관광상품 여행 말이다. 규슈올레가 생긴 뒤에는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천천히 걷고 즐기는 여행이 늘었다.”

이 주임은 후쿠오카대 일어일문학과 교환학생으로 규슈와 만났다. 같은 대학 경제학부 출신 남편과 2004년 8월 결혼한 뒤 이듬해 4월 출범한 규슈관광추진기구에 들어갔다. 당시 규슈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63만여명에 불과했다. 2010년 출산휴가 중 한국인 관광객 유치를 고민하던 그는 제주올레를 발견하고, 이듬해 8월 사단법인 제주올레와 업무제휴를 성사시켰다. 제주올레 브랜드 유지를 위해 명칭은 규슈올레로 정했다. 제주올레 로고는 물론 마스코트인 ‘간세’와 화살표, 리본 등 표지까지 모두 그대로 옮겨왔다.

2012년 2월 1차 규슈올레 코스인 사가현 다케오 코스, 구마모토현 아마쿠사·이와지마 코스, 오이타현 오쿠분고 코스, 가고시마현 이부스키·가이몬 코스 등 4개 코스를 개장했다. 이후 매년 2∼4개 코스씩 꾸준히 늘렸다. 지난달 개장한 가고시마현 이즈미 코스와 후쿠오카현 미야마·기요미즈야마 코스까지 현재 규슈에는 총 19개 올레길이 있다.

규슈올레길이 생긴 2012년 1만6750명이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1만∼2만명씩 늘어 지난해 3월까지 총 22만3620명이 이 길을 걸었다. 규슈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덩달아 급증했다. 2012년 115만명에서 지난해 372만명으로 3배 이상 껑충 뛰었다. 이 중 약 60%가 한국인이다.

이 주임은 19개 규슈올레길에 자신의 청춘을 담았다고 했다. 규슈의 길을 걸으며 두 아이도 키웠다. 길을 통해 배운 ‘이어짐’이 이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됐다. 그는 올레 의미에 대해 “처음에는 단순히 한국에서 유행하는 올레로 관광지를 조성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제주올레를 배우고, 규슈올레를 일궈내면서 나도 몰랐던 진짜 규슈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화나 스토리, 사람, 음식이 길로 이어지는 게 바로 올레”라며 “많이 걸으면서 규슈를 더 사랑하게 된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올레길을 걷다보면 우리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수십 번 걸어온 최초의 규슈올레 오쿠분고 코스에서 그는 “걸을 때마다 ‘다시 걸어도 참 좋구나’란 생각이 제일 많이 든다”면서 “소소한 시골 마을, 사람, 풍경 등 일반 유명 관광지에서 느낄 수 없는 본래의 ‘리얼재팬’이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주임은 규슈관광추진기구에서도 규슈 구석구석을 가장 많이 찾는 사람 중 하나다. 여행이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걸 먹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최근 시작한 ‘렌터카 관광 활성화’ 계획도 여기서 비롯됐다. 그는 “일반 패키지 여행에서는 대형화된 숙소와 식당에 갈 수밖에 없지만, 렌터카를 통해 ‘이동하는 자유’를 주면 작고 분위기 있는 소바집, 하루 8개 방만 받는 료칸 온천 같은 곳에 갈 수 있다”며 “내가 그런 여행을 좋아하니까 규슈를 찾는 손님들에게도 이런 여행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좋은 길을 찾기 위해 기꺼이 수풀로, 덤불로 들어가겠다는 이 주임은 앞으로도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민간 외교관’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각오다. 조만간 남편이 있는 중부 나고야로 거처를 옮긴 뒤 ‘올레길’을 전파하는 게 당면 목표다. 한·일 민간 교류도 길에서 시작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다른 길을 걷지만 우리 모두는 ‘길 위에 서 있다’는 공통분모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올레길로 이어져 있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규슈=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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