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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나를 살게 한 치유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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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10 20:55:04 수정 : 2017-04-11 15: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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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천장에 대고 팔을 활짝 벌렸다. 구원을 바라는 성직자처럼. 이윽고 어둠이 스며든 이불 속에서 손가락을 빨며 새우잠이 든 그는 자궁 속의 태아와 같았다.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리려는 듯.’

부끄럽지만 이 문장은 기자가 고교 2학년이던 2006년 교내 문학상에 출품한 소설 ‘잉여인간’의 한 대목이다. 지극히 자전적인 이 소설은 당시 절친했던 친구를 병마로 떠나보냈을 때의 심정을 그대로 녹여냈다. 실제로 나는 그해 겨울 친구의 죽음을 접한 뒤 우울증에 시달리며 몇 달간 식음을 전폐했다.


안병수 체육부 기자
그 당시의 나를 살게 한 것은 글쓰기를 통한 자기고백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것들. 이를테면 부고를 듣고도 실감이 나지 않아 장례식장에서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일, 학업을 핑계로 그 친구를 소홀히 대해 친구의 고통을 전혀 몰랐던 일 등을 모조리 토해내고 나니 비로소 마음의 응어리가 풀렸다.

이런 경험을 시작으로 나는 종종 ‘치유의 글쓰기’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고교와 대학 시절 힙합 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 지금의 주입식 교육을 비판한다거나 사회 현안을 둘러싼 의견을 랩 가사에 담아내면서 나름의 저항정신(?)을 표출하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치기에 불과한 말장난이지만 나를 옥죄던 여러 상황들을 내보임으로써 정신적 스트레스를 상당히 해소할 수 있었다.

최근 한국의 집단 우울증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줄지 않는 청년실업, 장기화된 경제난 등 국민의 가슴에 분노와 걱정거리가 마를 날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AIA생명이 아태지역 15개 국가의 성인 1만316명(한국 75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건강생활지수 조사 결과 한국인의 스트레스 지수는 6.6점으로 지역 평균인 6.2점보다 훨씬 높았다.

치솟는 스트레스를 달리 풀 방도가 없다면 ‘치유의 글쓰기’를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마음의 병인 우울증은 대부분 소통 부재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청년실업 등 현대 사회의 대표적 갈등은 개인 간에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측면에서 비롯돼 고통 받는 사람은 많지만 가해자는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쉽사리 누군가를 원망할 수도 없다. 결국 자기 자신을 비난하거나 갈등 상황과 무관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반복되니 소통은커녕 스트레스만 쌓인다.

나 역시 그랬다. 이미 하늘로 떠난 친구는 문자를 해도 답이 없었고 입시 위주의 교육 구조를 단번에 바꿔놓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세상과의 소통을 가능케 한 글쓰기는 내면의 어둠을 몰아내 주었다.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면서 내가 처한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동시에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다. 이 같은 경험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이미 글쓰기는 내면 치유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검증돼 심리 치료법에도 널리 쓰이고 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맥베스에는 ‘슬픔에게 말할 수 있도록 하여라. 말하지 않는 슬픔은 심장을 터지게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글을 읽는 당신, 혹시 답답함에 사로잡혔다면 지금 펜을 잡아라. 글을 쓰는 순간 어두웠던 내면에 서서히 동이 트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안병수 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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