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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의경제수첩] 1997 국가파산 vs 2017 정권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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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10 21:03:57 수정 : 2017-04-11 15: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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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위기 때보다 더 큰 시련
경제난·양극화 등 난제 수두룩
갈 길 멀지만 서둘러선 안 돼
신뢰회복이 경제회생 첫걸음
박근혜 정권이 마침내 파산했다. 신용이 펑크나 ‘법정관리’(탄핵심판)에 들어간 지 석달 만이다. 상식의 눈으로 볼 때 회생 가능성은 제로였다. 회생을 담보할 신용은 진작 바닥났다. ‘박순실 정권’에서 벌어진 기막힌 일들이 어디 한둘인가. ‘세월호 7시간’이 상징하듯 대통령은 직분에 충실하지 않았다. 대신 부지런히 재벌 총수를 불러 돈을 뜯고, 브로커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직분에 충실한 공무원을 말 한마디로 내쫓아버렸다. 모두 민간인 최순실과 얽혀 벌인 일들이다.

그런 터에 그들은 최소한의 품격도, 한 방울의 연민도 지키지 못했다. 숱한 물증과 증언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안면몰수하고 막가파식 대응으로 일관했다. 변호인들은 진검승부 대신 꼬투리잡기, 시간끌기, 장외선동으로 역사적 탄핵심판을 희롱했다.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할 친박 무리는 장외로 달려가 가짜뉴스에 꽂힌 ‘아스팔트 우파’들을 선동했다.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던 대통령은 그 대한민국이 두 동강이 나도록 끝내 애국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결과 헌법가치 위배 여부가 본질인 탄핵심판은 장외에서 좌우 대결로 변질돼버렸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그래서 완벽한 파산이다. 그들은 한 톨의 미련도 남기지 않았다. 새 출발을 하기엔 차라리 좋은 조건이다. 그냥 새 출발이 아니라 ‘박정희 패러다임’과 결별하는 역사적 대전환이다. ‘박순실 정권’은 그들의 아버지 시대에 뿌려진 씨앗이 30여년간 자라 맺은 결실이다. 박근혜, 최순실 두 사람은 부친들의 어두운 과거를 모방하고 답습했다.

20년 전에도 큰 파산이 있었다. 그땐 정권이 아니라 나라였다. 대외지불능력(외환보유액)이 바닥나면서 나라가 부도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신탁통치’가 시작됐다. 대기업이 쓰러지고 실업자가 쏟아졌다. 고통이 컸지만 회복은 빨랐다. 1998년 5.5% 뒷걸음질친 경제는 1999년 11.3%, 2000년 8.9% 성장했다. 39억달러까지 빠졌던 외환 곳간은 3년 만에 1000억달러 수준으로 불어났다.

20년 시차의 ‘국가 파산’과 ‘정권 파산’은 공통점을 갖는다. 그때 그랬듯 정권교체는 필연이다. 그러나 회복 과정은 상당히 다를 것이다. 대한민국호를 이끌 새 정부는 국가 부도사태 때보다 훨씬 더 길고 거친 항로를 견뎌내야 할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는 고도성장기의 ‘유동성 위기’였을 뿐이다. 성장엔진(잠재성장률)은 생생했고 세계경제는 호황이었다. V자 반등이 가능했던 이유다.

지금은 위기의 성격도, 조건도 다르다. 청년실업, 가계부채, 노인빈곤 등 양극화, 고령화의 구조적 문제와 정책 실패의 잔해가 첩첩이고, 성장엔진은 동력을 잃어가는 중이다. 한마디로 저성장 터널에 갇힌 ‘구조적 위기’다. 나라 밖 상황은 설상가상이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마당에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와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상징되는 미·중 G2의 패권이 한반도 안팎에서 으르렁대고 있다.

‘박순실 정권’의 잘못은 국정농단만이 아니다. 잿밥에 한눈팔면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죄야말로 나라를 수렁에 몰아넣은 중죄다. ‘국가의 시간’을 훔쳐 삿되게 낭비한 셈이고, 그 결과 경제위기가 심화했으며 사회적 자본인 신뢰가 허물어졌다. 경제정책만 해도 “위기의 본질, 원인도 파악하지 못한 채 돈 풀어 부동산 경기를 띄우는 옛날식 대책으로 위기만 키운다”(조순 전 한국은행 총재)는 비판이 나온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새 정권은 전 정권의 무능과 오만이 심판받은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야 한다. 갈 길이 멀고 험하지만 급할 건 없다. 경제성장률, 국가순위 등을 버무린 ‘7·4·7’(이명박 정부), ‘4·7·4’(박근혜 정부) 따위의 숫자놀음부터 중단하기 바란다.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해도 온갖 모순을 숨겨놓은 경제지표가 삶의 질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다.

앞서 허물어진 신뢰를 세우는 게 급선무다.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여기에서 멈춘다).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경구를 새기는 것도 좋겠다.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 그게 경제대책의 첫걸음이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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