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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14 01:19:51 수정 : 2017-04-11 16: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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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문 못 열은 카프카의 ‘시골남자’ / 어둠 이긴 촛불의 광채 명예로워야
한 시골 남자가 ‘법’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문지기가 입장을 가로막는다. 시골 남자는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문지기는 나중에는 가능한 일이지만 지금은 안 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금지’를 어겨서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더 위력적인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안 된다고 위협한다. 시골 남자는 가져온 물품을 뇌물로 주기도 하며 다각적인 시도를 하지만 문지기의 금지를 풀지 못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는 법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마침내 쇠약해진 그는 최후의 순간에 ‘법의 문으로부터 꺼질 줄 모르고 흘러나오는 광채’를 알아보게 된다. 그는 문지기에게 왜 이 문을 통해 법으로의 입장을 요청한 다른 사람들이 없었느냐고 묻는다. 문지기는 이 입구는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정해진 곳이라며 문을 닫는다.

이는 프라하를 대표하는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짧은 소설 ‘법 앞에서’로 발표됐다가 미완성 장편 ‘소송’의 9장에 편입된 이야기다. 작가는 이 소설을 특히 좋아해 만족감과 행복감을 생전에도 밝힌 바 있다. 그만큼 매우 복합적인 의미망을 함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골 남자가 왜 법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했는지는 드러나 있지 않다. 오직 그는 법으로 들어가길 욕망했고, 문지기는 금지했다는 사실만 드러나 있다. 문지기의 금지는 법과 관련한 권력을 최대한 이용하는 타락한 관료주의나 전체주의적 속성의 단면을 환기한다. 오직 그를 위한 입구임에도 지금은 안 되고 나중에는 가능하다며 끝내 허용하지 않은 부조리함의 알레고리가 어지간하다. 최후의 순간까지 허용받지 못한 시골 남자는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부당하게 외면당한 자의 슬픈 상징이다.

그런데 시골 남자는 왜 문지기의 말만 믿고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했을까. 그의 위협적인 말에 압도됐던 탓일까. 세속적으로 뇌물을 준다든지 하는 방식 이외에 정당한 자유의지에 따른 적극적 시도나 행동을 보이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물론 카프카의 ‘법’은 비단 정치적인 맥락이나 사회철학적 맥락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종교적인 율법이나 신 형이상학적인 진리나 본질적 존재론과도 관련된다. 무릇 궁극적인 진리에 지금 당장 이르기는 어려운 법이다. 부단히 다음으로, 다음으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시골 남자가 최후의 순간에야 법 안에서 흘러나오는 빛의 광휘를 보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법 안으로의 입장을 금지당한 시골 남자는 그 빛을 봤고, 금지한 문지기는 끝내 보지 못했다. 정치적 맥락에서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작가 토마스 만은 카프카를 일러 “그는 몽상가였고, 그의 작품들은 자주 꿈의 성격 속에서 완전히 구상되고 형상화돼 있다. 그의 작품들은 비논리적이고 답답한 이 꿈의 바보짓을 정확히 흉내 냄으로써 생의 이 기괴한 그림자놀이를 비웃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1915년 프라하의 ‘시골 남자’는 법의 문을 끝내 열지 못했다. 2017년 한국의 ‘시골 남자’들은 그 문을 마침내 열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촛불의 간절한 몽상과 실천에 의해 열린 법의 문 안에서 이제 진정한 법의 광채를 더 명예롭게 모색할 차례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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