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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애독서] 나만 옳다는 법열의 환상은 파멸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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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14 01:20:37 수정 : 2017-04-11 16: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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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읽으면, 지금 한국의 사회상이 중세 암흑시대의 유럽과 놀랄 만큼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장미의 이름’의 배경인 14세기에는 독일 제후들이 옹립한 바바리아의 교황과 프랑스에서 등극한 아비뇽의 교황이 서로를 배교자라고 비난하고 있었으며, 교단 역시 베네딕트파와 프란체스코파로 갈라져 서로 자기네가 정의와 진리를 대변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한 혼란 가운데서 교황청은 무고한 사람들을 마녀와 이단으로 몰아 무차별 화형에 처하고 있었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서울대 명예교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도원은 바로 그런 분열되고 어두운 닫힌 사회의 상징이다. 남성만 있는 수도원에는 여성적 유연함이 없고 경직된 독선과 횡포가 횡행하게 된다. 이탈리아의 한 베네딕트파 수도원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프란체스코파 스승 윌리엄과 함께 해결하면서 수습 동자인 아드소는 스스로를 정통과 정의라고 생각하는 독선이 살인도 합리화시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과연 장서관장 요르게 노인은 사람들이 금서를 읽지 못하게 하려고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교황청의 조사관 베르나르 귀는 절대적 진리를 수호한다는 명분아래 죄 없는 사람들을 마녀와 이단으로 몰아 처형한다.

잘못된 정의감에 취한 요르게와 베르나르 귀의 광기를 목격한 윌리엄 수사는 “법열의 환상과 사악한 광란은 별 차이가 없다. 약과 독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그래서 그리스어 파르마콘에는 약과 독의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고 아드소를 깨우쳐준다. 아드소 역시 성모 마리아와 장서관의 서책에서 본 바빌론의 창녀가 둘 다 똑같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정통과 이단, 진리와 비진리, 정의와 불의 사이의 경계는 무너진다.

지금 우리 사회는 중세 교단처럼 분열되어 있고, 서로 자기만 정의라고 주장하며 상대방을 이단시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윌리엄은 아드소에게 말한다.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을 조심해라. 그런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자기 대신 죽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장미의 이름’은 필연적인 파멸을 피하려면, “너는 틀렸고 나만 옳다”는 법열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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