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소설의 공존
동학운동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다룬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는 하동이다. 박경리 선생이 하동을 ‘토지’의 배경으로 삼았지만,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통영 출신에 진주에서 성장한 그는 ‘토지’의 무대를 경상도로 삼았지만, ‘만석꾼’의 이미지에 맞는 드넓은 토지를 경상도에서 찾기가 힘들었다. 그런 그에게 하동의 평사리는 우연히 다가왔다. 딸과 여행을 다니다 만나게 된 곳이 평사리다. 경상도 어느 곳보다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인근 섬진강과 지리산이 주는 무게감이 그를 매료시켰을 것이다.
경남 하동 최참판댁에서는 드넓은 평사리 들판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들판에서 눈에 띄는 것은 소나무 두 그루다. 너른 들판에 우뚝 솟은 두 그루의 나무를 부부송이라 부른다. 서로 의지한 채 서 있는 모습이 그리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
토지의 배경이 된 평사리를 보려면 최참판댁으로 가야 한다. ‘토지’의 배경인 평사리에 소설 속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놨다. 실제 박경리 선생이 소설에서 모델로 한 집은 최참판댁 아래에 있는 조씨 고택이다.
소설 ‘토지’의 주인공 서희가 머문 별당과 연못을 재현해놨다. |
이곳에 재현된 최참판댁 정문을 나오면 드넓은 평사리 들판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들판에서 눈에 띄는 것은 소나무 두 그루다. 너른 들판에 우뚝 솟은 두 그루의 나무를 부부송이라 부른다. 서로 의지한 채 서 있는 모습이 그리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작은 호수도 있는데 동정호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곳을 보고 고향 땅에 있는 호수와 닮았다며 ‘동정호’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최참판댁 별당에서는 다도 체험을 할 수 있다. |
최참판댁 안에 들어서면 주인 최치수가 머물던 사랑채에 발길이 먼저 닿는다. 누각에 올라 바라보면 평사리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집 안을 돌다 연못이 있는 별당에 이르게 된다. ‘토지’의 주인공 서희가 거처하던 곳이다. 사랑채와 별당에선 현대판 최치수와 서희를 만날 수 있다.
소설 ‘토지’의 주인공 서희가 살던 최참판댁은 소설 속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곳이다. |
◆법계와 속계의 공존
우리 역사에서 많은 인물이 신선이 됐다. 그들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이 해동공자 최치원이다. 하동 곳곳엔 최치원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쌍계사다.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때 의상대사의 제자 삼법이 창건했다. 전란으로 소실되기도 했던 쌍계사는 조선 때 중건됐다.
쌍계사 일주문. |
쌍계사 대웅전 앞에 있는 진감선사 부도비의 글을 최치원이 지었다. 6·25전쟁 때 총탄을 맞은 자국도 그대로 남아 있는 등 깨지고, 마멸이 가 있다. |
쌍계사 대웅전 근처의 꽃담. |
‘석문’이 새겨진 바위 뒤편을 보면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완용이 쓴 글이 있다. 쌍계사를 찾아 가족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해방 후 학생들이 이 글 위에 용변을 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
최치원이 속세에서 마지막으로 귀를 씻은 바위 세이암. 최치원은 여기서 귀를 씻은 후 지리산으로 들어가 속세와 연을 끊었다. |
푸조나무 건너편으로는 세이암이 있다. 최치원이 속세에서 마지막으로 귀를 씻은 바위다. 귀를 씻은 후 지리산으로 들어간 그는 속세와 연을 끊는다. 그래서 그의 연표를 보면 출생연도(857년)는 있지만 사망연도는 ‘?’로 표기돼 있다. 누구도 그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셈이다.
하동=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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