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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합의 놓고 ‘친일’ 독설
명분에 집착하면 실리 잃어
외교관계는 국민감정보다
안보·경제 등 국익이 더 중요
정말 듣기에도 섬뜩하다. 정치권에서 ‘일본 앞잡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막말의 주인공은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다. 그는 얼마 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겨냥해 “일본의 폭거에 뒷짐만 지고 있더니 이제 대놓고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고 소리쳤다. 3선 중진인사가 당의 공식 선상에서 쏟아낸 언행이 이런 수준이다. 이쯤 되면 말이 아니라 ‘인격 살인’하는 비수다.

그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황 대행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황 대행이 3·1절 기념사에서 “합의 취지와 정신을 진심으로 존중하면서 실천해야 한다”고 하자 발끈한 것이다. 그의 말이 국민 정서와는 거리가 있지만 합의를 추진했던 국정 책임자로서 존중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일본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배연국 논설실장
주한일본대사가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본국으로 돌아간 지 70일이 지났다. 양국 간 통화스와프 협상이 중단되고 한·일 고위급 경제협의도 무기한 연기됐다. 이런 비정상이 장기화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한반도 주변 정세마저 불안하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위안부 문제에 깊이 사죄하지 않은 일본의 책임이 무겁다. 일본은 우리에게 좋은 이웃이 아니다.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고 우리 영토인 독도까지 넘본다. 그런 일본에게 참회하라고 해봐야 쇠귀에 경 읽기다. 주 원내대표가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면 합법적으로 체결된 위안부 합의를 파기할 텐가. 양국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이르는 사태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국가 간의 관계는 사인 간의 관계와는 다르다. 개인은 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만나지 않으면 그만이다. 국가는 그럴 수 없다. 싫어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두 나라의 사이가 좋다면 우의를 더 돈독히 해야 하고, 나쁘다면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어제의 적이라도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오늘의 친구로 사귀어야 하는 것이 외교다.

400여년 전 임진왜란 당시 우리가 일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은 그런 외교의 기본을 망각한 탓도 있다.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긴 조선은 일본을 우리보다 훨씬 작은 야만의 나라로 얕보았다. 실제 일본은 땅덩이나 인구나 경제 규모에서 조선보다 모두 우위에 있었다. 일본에 대해선 잘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서애 유성룡은 그런 편협한 외교를 걱정했다. 그는 자신의 징비록에 대일 외교를 강조한 신숙주의 유언을 담았다. 신숙주는 임종을 맞아 성종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는지 묻자 “원컨대 일본과의 화의를 잃지 마소서”라고 답했다.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왔던 신숙주는 일본 정세에 누구보다 밝았다. 성종은 그의 말에 따라 사신을 보냈다. 그러나 딱 한 번에 그쳤고, 일본에서 사신이 오면 그저 접대만 할 뿐이었다. 그 결과 일본은 조선을 훤히 꿰뚫고 있었지만 조선은 일본에 청맹과니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조선은 일본이 자행한 두 번의 침략에서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한번은 겨우 나라를 보존했지만 두 번째는 그러지 못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처지는 과거 조선과는 물론 다르다.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을 넘나든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이웃은 예전 그대로다. 세계 2위 중국과 3위 일본이 좌우로 포진하고 있다. 더구나 오늘의 중국은 우리를 감싸주던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체제도 다르고 주변국에 주먹을 휘두르며 골목대장 행세를 한다. 그런 처지에 대한민국은 국토의 허리가 잘린 채 광기의 북한 정권으로부터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일본에게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는 우리의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안보와 경제, 남북통일 등 국가적 과제도 생각해야 한다. 명분에만 집착하면 실리를 잃는다. 국익 차원에서 일본과의 화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함부로 친일의 올가미를 씌워선 안 된다. 외세의 침략을 부르는 것은 그런 ‘우물 안 사고’다. 정말 누가 일본 앞잡이인가? 주승용인가, 황교안인가.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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