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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연구가 이현주씨 ‘역관상언등록’ 첫 번역 출간

입력 : 2017-03-22 03:00:00 수정 : 2017-03-22 1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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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조선 외교사 중심에 선 역관들의 생생한 기록 “대학을 졸업한 지 30년 만에 다시 학교에 다닐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다 늦은 나이에 낯선 고문헌 번역·연구 분야에 발을 들여놓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맺은 좋은 인연들 덕분에 책까지 내게 되었네요.”

고전번역연구가 이현주(54)씨가 이두와 한문으로 기록된 고문서 ‘역관상언등록(譯官上言謄錄)’을 번역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 준비한 땀의 결실이다. ‘역관상언등록’을 역주하는 일은 사실 국어학·사학·문헌학·번역학·한문학·고문서학 등 여러 학문을 조금씩이라도 섭렵하지 않으면 접근하기 쉽지 않은 난제였다. 그러나 이씨의 이력을 살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음을 알게 된다.

17세기 역관의 원천사료 ‘역관상언등록’ 연구서를 펴낸 고전연구가 이현주씨. 이씨는 ‘역관상언등록 연구’(글항아리) 출간을 계기로 한문사료 번역과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려대학교 대학원 고전번역협동과정에서 석사학위를 받기 전까지 이씨의 이력은 대체로 10년 단위로 공부의 진전이 있었다. 20대 서강대 재학시절에는 전공인 종교학과 함께 사학을 부전공으로 삼아 학문하는 방법의 기틀을 마련했다. 30대엔 살림을 하면서도 꾸준한 독서와 어학 공부로 번역과 글쓰기를 연마했고, 경서와 의학한문을 시작으로 10년 넘게 한학자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한문 공부를 한 40대는 논문을 쓰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이씨는 아담한 체구에 연약해 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인터뷰를 하는 동안 주관이 뚜렷했고, 근기가 있어 보였다.

-고려대 대학원 고전번역협동과정은 어떤 학과인가?

한문고전번역이 전공이며, 학제 간 연구가 가능한 학과입니다. 한문으로 된 고전번역의 이론과 실무에 밝은 전문 인력을 키워내는 곳이므로 원전의 독해능력 향상에 관련한 과목들은 물론 번역학과 번역비평, 철학, 역사에 관련한 다양한 과목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역관상언등록’이란 어떤 책인가?

1책 45장 분량의 필사 원본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마이크로필름 형태로는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실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조선 인조 15년(1637)부터 숙종 18년(1692) 사이의 문건으로 대체로 지방관들의 장계와 첩정, 역관들의 상언을 근거로 예조(禮曹)에서 계목을 작성하고 국왕께 올려 재가를 받은 것들입니다. 해결해야할 사안과 처리과정, 그리고 그 결과를 한눈에 알 수 있게 쓰여 있습니다. 따라서 관련자들이 정책을 마련하거나, 후임자들이 실무를 맡아 참고해야 할 때마다 활용했을 것입니다. 업무 효율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사역원 내의 체계적인 인사행정에 중요한 근거가 되었을 것입니다.

-주된 내용은 무엇인가?

대부분은 역관 인사에 관한 것입니다. 첫 장부터 외교의 최전방이며 나라의 문호가 되는 의주와 동래의 지방관들이 유능한 역관을 보내달라고 올리는 장계로 시작합니다. 적임자와 후임자 인선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병자호란과 신축대흉년으로 줄어든 역관의 자리를 마련해달라는 상언 또한 많습니다. 그 외에 역관들의 애로사항, 처우 개선, 시재와 취재를 보강하여 인재로 양성하자는 내용이 있습니다.

-‘역관상언등록’은 어떤 점에서 가치 있는 사료라고 보나?

역관들이 능동적으로 소신껏 의견을 내고 결과를 얻어낸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뢰성 있는 공문서가 이두와 한문으로 적혀있으므로, 여러 분야에서 참고할 1차 사료로서 가치가 매우 큽니다. 이두의 변천사, 역관의 위상과 활동 범위, 역관의 실직과 체아직, 상언과 등록, 역사 사료 번역비평 등의 연구에서, 원천사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논문과 책을 쓰면서 역관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했는데, 17세기 동아시아 국제 정세 속에서 조선의 역관들은 어떠했나?

17세기 초는 중국과 일본에서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는 시기였습니다. 조선도 연이어 겪은 전란으로 변화의 한가운데 놓였습니다. 그러나 유능한 역관들이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정확히 읽고 외교 현장 곳곳에서 활약하였고, 역학서를 스스로 연구 개발하여 인재 양성에 길이 남을 공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공을 세운 알려지지 않은 역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사리사욕이나 일삼고 어학 실력도 형편없는 무능한 존재로만 여기는 너무 과장된 이미지는 걷어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어떻게 ‘역관상언등록’을 번역·연구 대상으로 삼게 됐나?

고전번역협동과정이라는 학과 명칭에서 ‘번역’에 종사한 전통적인 직업군을 찾아보니 ‘역관’이 있었습니다. 역관 관련한 원전 사료들과 논문들을 읽는 중에 그들이 상언한 등록이 있었고,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역관상언등록’ 필사본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상언(上言)’은 국왕에게 올리는 문서양식을 말합니다.

-‘역관상언등록’ 역주 논문과 단행본을 펴낸 과정을 알 수 있나?

매학기 4과목씩 수강하고, 학부를 막론하고 필요한 강좌는 어디든 가서 청강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습니다. 수 없이 읽고 쓰면서 동시에 질문노트를 만들고 각 분야의 원로들과 전공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전문가들이 계신 연구실, 관련 자료가 소장된 도서관과 박물관, 규장각으로 찾아가 현장에서 확인하면서 번역문을 다듬었습니다. 기꺼이 시간을 내주고 흔쾌히 도와주신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기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출간한 ‘역관상언등록 연구’(글항아리)는 저자에게 어떤 책인가?

인생이 처음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았지만, 살면서 얻은 경험 중 어느 것도 불필요하고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준, 제게는 상징적인 책입니다. 저는 서강대에서 제 생각의 틀을 마련한 후 살림하면서 독서, 글쓰기, 어휘와 번역 연습, 한문 공부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우연히 대학원에 입학해서는 20대 학부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오랜 세월 길 위의 독학자와 같았던 제 삶의 여정에서, 이 책을 찾을 독자를 위해 힘껏 쓰고 싶었습니다. 필요한 책이라면 무엇에도 얽매지 않고 묵묵히 쓰겠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석사논문을 썼으며, 이번에 출간한 ‘역관상언등록 연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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