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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말로 싸운다?… 화끈한 입담·풍자 ‘웃음보따리’

입력 : 2017-03-23 21:31:22 수정 : 2017-03-23 21: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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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코믹액션 애니 ‘만담강호’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깽값이 두려워 말로만 싸우는 자들’이란 자막이 뜬다. 메인 캐릭터들이 칼을 휘두르는 화려한 오프닝 시퀀스가 이어지지만 어딘가 어설프다.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진 무림에서 절대무공의 비책을 차지하는 자가 세상을 평정한다는 설정인데도 비장함과 멋스러움 따윈 없다. 등장인물 전원이 칼 대신 ‘말빨’을 무기로, 각자의 허세를 과시하며 숨넘어가는 19금 속사포 ‘B드립’ 혈투를 벌인다.

코믹액션 성인용 애니메이션 ‘만담강호’(감독 정지혁·장석조)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스토리 대신 특이한 매력을 지닌 캐릭터들로 승부를 건다. 사람이 하늘을 날고 주먹으로 산을 부순다는 강호무림 세계의 언저리. 버라이어티하게 어설퍼 보이는 3인의 무사가 우연히 풍림객잔에 모인다. 무공보다는 여자를 탐하는 난봉색남 ‘화화공자’, 강호 포커페이스계의 절대강자 ‘소소할배’, 깡다구 패거리의 비선실세 ‘점룡혈객’.

풍자와 해학의 ‘만담강호’는 풍림객잔에서 벌어지는 허세남들의 한바탕 촌극이다. 쌍욕과 폭력, 때론 엽기적이기까지 하지만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사이다’ 화법과 유쾌한 도발에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필앤플랜 제공
‘남자는 주먹으로 싸우지 않고 말로 싸운다’라는 콘셉트에서 시작된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푸짐한 쌍욕을 용인하고 인물들이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입담에 기꺼이 정신을 놓고 빠져들면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 개그의 근간이 패러디이기에 영화 곳곳에 숨은그림찾기처럼 배치해놓은 장면들을 단순히 재미로 웃고 넘겨버리면 아쉬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2012년 온라인상에서 뜨거운 공방을 벌였던 진중권과 변희재의 ‘사망유희 토론’을 소소할배와 주방장 캐릭터를 통해 재연한다. 유머를 적당히 넘어가지 못하고 논리를 내세우는 사람을 뜻하는 인터넷 용어 ‘선비’를 차용해 10명의 ‘십선비’를 등장시키는가 하면, 홍콩 코미디 영화 ‘강시선생’ 시리즈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환도사’와 강시들, ‘소림사 18동인’ 시리즈가 연상되는 ‘주방장’과 ‘18동인’ 오마주도 반갑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아이템에서 최근 회자되는 이슈들까지 언어유희와 다양한 형태로 패러디하며 오락영화 본연의 장르적 쾌감을 배가시킨다.

객잔 안에서 미모의 여성을 두고 실랑이를 하던 화화공자와 점룡혈객 패거리들은 난데없이 등장한 고수 소소할배와 대치하게 된다. 소소할배의 목적은 절대무공 비급을 가지러 온 것. 객잔 안에 비급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무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욕심에 눈이 뒤집힌다.

자존심은 지켜야 하는 것이 강호인의 숙명인지라 각자의 비기를 내세워 강함을 과시하는데, 알고 보면 이들은 젓가락 싸움도 못할 빈껍데기들이다. 이들의 입담 대결은 체면 따위는 다 벗어 던지고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는 ‘허세’라는 데 방점이 있다. 도를 넘는 허세 본능은 극이 진행될수록 더욱 고조된다.

감독은 이들의 말빨 대결에 대해 “무공 비급이라는 출세의 동아줄을 두고 각계각층의 캐릭터들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눈치 게임”이라 말한다. 힘의 강함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세계에서 권력을 상징하는 것은 바로 무공 비급이다. 진위도 판명할 수 없는 한 권의 비급에 대한 욕망은 맹목적이 되어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다 결국 권력을 탐하는 폭력성에 서로 죽이고 죽으며 일순간 파국을 맞는다.

‘언어유희’로 시작해 ‘사망유희’로 마무리되는 풍자극 ‘만담강호’는 의미 없는 허풍을 떨며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는 인간의 민낯을 가감 없이 은유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아이러니의 묘미를 보여준다.

특히 영화는 남들이 인정할 만한 노력을 통한 정정당당한 대결보다는 쾌속 진급의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은 캐릭터의 이야기로 예나 지금이나 유효한 메시지를 전한다. 단단한 출세의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로 탈바꿈한 모습은 최고의 권력만을 좇다 국정농단이라는 파국으로 치달은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시사회 직후 ‘극장에서 이렇게 많이 웃어보기는 처음이다’ ‘시원하고 차진 욕을 들으니 반갑다. 팍팍한 세상에 웃음 한보따리를 선사한다’ 등의 평가를 받았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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