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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금강(金剛), 여름 봉래(蓬萊), 가을 풍악(楓嶽), 겨울 개골(皆骨). 계절마다 이름을 바꾸는 산은 흔하지 않다. 금강산은 영산(靈山)이다. 부처의 지덕을 이르는 ‘금강’, 삼신(三神)이 노니는 ‘봉래’라는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제주 여인 만덕(萬德). 그의 이름에는 노기(老妓)라는 별칭이 붙는다. 정조 19년, 1795년 제주도에 기근이 찾아들자 천금을 내어 육지에서 쌀을 사다 백성의 목숨을 구했다. 감동한 정조, “만덕을 불러올리라”는 유지(有旨)를 내렸다. 유지를 전하는 제주목사에게 만덕이 한 말, “저는 늙고 자식이 없어 면천(免賤)할 마음이 없고, 오직 육지에 나가보고 싶을 뿐입니다.” 한양에서 정조에게는 이런 말을 했다. “오직 금강산을 볼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정조는 겨우내 의녀를 붙여 만덕을 돌보게 한 뒤 이듬해 봄 금강산을 유람시켰다. 얼마나 조선을 감동시켰던지, 영의정 채제공은 75세의 나이로 직접 ‘만덕전’을 썼다.

금강산은 만덕의 가슴에만 있었을까. 정조 때 우의정 심환지는 68세 때 금강산 구경에 나섰다. 만덕이 금강산을 다녀온 지 2년 뒤다. 정조는 노신이 걱정스러웠다. 서찰에 이렇게 썼다. “금강산으로 떠나느라 헤어진 지 하룻밤이 지났다. 그리운 마음 금할 수 없도다.” 서찰과 함께 인삼 한 냥, 청심원 10환, 안신환 10환 등 온갖 약재를 보냈다. 노신 아끼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4년 뒤 심환지는 세상을 떴다.

율곡 이이. 16세 때 어머니 신사임당을 여의자 3년상을 치른 뒤 보따리를 싸 아예 금강산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불경을 공부했다고 한다. ‘조선의 대유’ 이이의 마음공부는 그로부터 시작된다.

이번에는 북한이 이야기 거리 하나를 또 만들었다. 동남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국제여객선을 유치하겠다고 한다. 이유는 빤하다. 외화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 금강산이 지금처럼 푸대접 받은 적이 있던가. 금강산은 마음을 다스리는 곳이다. 그곳에서 율곡은 마음을 닦고, 만덕과 심환지는 생을 돌아봤다. 지금은? 철조망만 가득하다. 금강산 관광? 무엇을 보고 느끼라는 말일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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