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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와 만납시다] 소년원을 가다 ②…"선생님, 더 계시면 안 돼요?"

입력 : 2017-03-25 08:00:00 수정 : 2017-03-24 16: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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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선생님이다! 선생님 오시는 날만 기다렸다고요!”

대걸레로 복도 닦던 한 여학생이 윤복순씨를 보더니 달려와 와락 껴안았다. 옆의 다른 학생들도 윤씨를 환영했다. 교실 문을 열고 나오던 여학생도 그를 보더니 다가와 반갑게 인사했다.

지난 23일 오후 2시15분쯤.

곧 수업이 시작한다. 윤씨와 아이들이 정답게 인사를 나누는 이곳은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경기도 안양시 소재). 포털사이트에서 학교 이름을 검색하면 금방 나온다. 여학생 100여명이 생활하는 안양소년원이다.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에서 생활 중인 한 여학생이 만든 지점토 작품.


전국에는 학교 명칭을 복수로 사용하는 소년원 총 10곳이 있다.

법원 소년부 판결에 따라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2년 이내 보호처분을 받는 만 10~19세 소년들이 생활한다.

‘보호처분’은 법원 소년부 판사가 소년보호사건을 심리한 결과 국가의 적극적인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내리는 처분을 말한다. 형사처분과 달리 소년의 장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은 밝히고 있다.

소년원은 저마다 학생들을 위한 심리치료 수업을 개설한다. 아이들 내면을 치료하는 게 목표다. 제과제빵, 헤어디자인처럼 직업훈련 교육도 실시한다. 학생들이 사회로 돌아갔을 때 구성원으로 잘 적응하기를 유도하려는 목적이다.

 
'왕'두콩과 장미꽃.


윤씨는 올해부터 학교에서 미술치료를 담당한다. 3월부터 수업을 시작했으니 이제 4주째다. 미술심리상담사 1급 자격 소지자인 그는 목요일마다 여학생 10명 내외를 데리고 미술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미술을 매개로 아이들 마음을 열고, 서로 소통하는 시간이다.

기자가 동행한 이날 윤씨는 △ ‘나도 그래’ △ ‘지점토로 만들기’ 수업을 진행했다.

‘나도 그래’ 수업은 커다란 전지에 자기만의 동그라미를 그리고 다른 학생이 자기감정을 밝혔을 때, 공감한다면 해당 학생을 향해 화살표를 그리며 “나도 그래”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점토 수업은 저마다 주어진 지점토로 평소 생각한 인물이나 정물 등을 만드는 시간이다. 촉감을 매개로 마음을 여는 수업이다.

예체능을 활용한 심리치료 수업은 전국 소년원이 중요시하는 영역이다.

2시간 정도 함께 수업을 진행하면서 느낀 건 이들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여학생이라는 점이다.

누군가 감정의 브레이크를 잡아주지 않아 잘못된 길로 빠져들었겠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어느 학교에서나 만날 수 있는 여학생처럼 생각됐다. 9호 처분(수용 기간 6개월 이내)과 10호 처분(수용 기간 2년 이내)을 받은 여학생들이 생활한다.

 
피자가 먹고 싶다며 지점토로 알록달록 작품을 만든 한 여학생.


퇴원을 두 달도 남기지 않았다던 한 여학생은 “설렌다”고 말했다. 옆에서 비슷한 기간을 남겨둔 학생도 맞장구쳤다. 하루빨리 사회로 돌아가고 싶은듯하다.

이들은 기자에게 윤씨가 가져온 초콜릿과 케이크 등을 조금씩 내밀었다. 어쩐지 앞에서 먹기가 민망해 주머니에 넣어뒀는데, 나중에 학교에서 나왔을 때 초콜릿을 만지고는 말로 표현 못할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약 1시간30분 후, 자기 작품 설명하는 차례가 됐을 때 기자는 “치킨을 좋아해요”라며 새하얀 지점토로 만든 닭을 선보였다. 그러자 “저도 치킨이 먹고 싶어요”라는 말이 학생들 입에서 연이어 쏟아졌다.

피자를 만든 학생도 있었고, 만화 속 캐릭터를 내놓은 이도 있었다. ‘왕’두콩이라며 초록색 찰흙과 섞어 만든 커다란 콩을 내놓은 여학생 작품을 보자 교실에 웃음꽃이 폈다. 한 여학생은 이곳에서 알게 돼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며 인물 모형을 여러개 만들고는 각각 이름을 새겨넣었다.

예닐곱명 여학생이 지점토를 주무르는 사이 한 여학생이 반대쪽에 홀로 앉아 파스텔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관계자들 말에 따르면 이 학생은 나이가 많다고 했다. 소년원 수용 가능 상한 연령(만 22세)에 가깝다고 밝혔다.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말도 들었다. 앞에 놓인 파스텔로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나간 그는 수업 내내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윤씨는 이 학생의 감정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파스텔로 자기만의 들판을 종이에 수놓는 학생이 처음에는 어두운색을 주로 썼지만, 점점 바탕이 밝아졌다고 귀띔했다. 그만큼 감정에 변화가 오는 것 아니냐는 게 관계자들 생각이기도 하다.

 
만화에서 나올 것 같은 캐릭터. 지금까지 소개한 지점토 작품은 모두 학교에서 생활하는 여학생들이 만들었다.


수업이 끝나는 오후 4시가 다가오면서 아이들은 “더 계시면 안 돼요?”라고 윤씨를 붙들었다. 어떤 시간보다도 미술치료를 기다리는 게 분명했다. 그런 아이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는지 윤씨는 웃으면서도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윤씨는 별도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솔직하고 예쁘다”며 “학교를 오가는 내내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에게 필요한 건 관심과 같이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라며 “뭘 가르치려 하는 게 아닌, 소통을 시도하니 아이들이 다가와 줬다”고 덧붙였다.

“선생님에게서 좋은 냄새가 나요.”

윤씨를 만난 한 여학생이 그에게 건넸던 말이다.

안양=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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