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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광적 믿음으로 진실 왜곡… '그들만의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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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26 10:38:34 수정 : 2017-03-26 13: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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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동 사저 담장에 ‘포스트잇’ 가득/사랑·탄핵무효 등 천편일률적 메시지/구체적 실체 없이 ‘진실규명’ 부르짖어/전문가들 “朴 무결점 존재로 떠받들어”/탄핵 정국 장본인 최순실 언급은 없고/김무성·유승민에 '천벌·역적' 비난 화살
배신자들 때문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랑 그 자체.”

일반적으로 순교자를 떠올리게 하는 이런 규정을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한다. 지난 14일부터 서울 삼성동 박 전 대통령 자택 담장을 채우기 시작해 2주 만에 ‘그들만의 성벽’을 만든 포스트잇의 내용을 분석하면 이르게 되는 결론이다.

‘박근혜’는 그들이 믿는 진실 속에서는 무결점 존재다. 박정희의 카리스마와 육영수의 자애가 합쳐진 사랑의 대상이기도 하다. 대다수 국민들의 외면을 받아 헌정 사상 처음으로 쫓겨난 대통령에 대한 지지자들의 광적인 말과 행동은 이런 인식에서 비롯된다. 

지난 14일부터 지지자들이 서울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의 담장에 붙인 포스트잇에서 박 전 대통령을 향한 그들의 사랑, 인식, 탄핵에 대한 판단 등을 읽을 수 있다.
◆실체 없는 진실 규명, “목숨 걸고 지키겠다”


“억울한 탄핵… 대통령님의 진실 규명에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꼭 밝혀질 겁니다. 종북놈들 처단해라.”

포스트잇에서 지지자들은 ‘진실’을 124회 언급했다. 의미가 강하게 연결되는 단어를 보여주는 ‘의미망 분석’을 하면 진실은 ‘탄핵’(137), ‘밝히다’(90회)와 밀접했다. ‘억울하게 탄핵을 당했으나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포스트잇에 담긴 지지자들의 속내다.

하지만 부르짖는 진실의 구체적인 실체를 말하지는 않는다.

한림대 신경아 교수(사회학과)는 “이들이 말하는 진실은 검증 가능한 사실로 구성된 ‘사실적 진실’이 아니라 믿는 것에 매몰된 ‘서사적 진실’이다. 그 속에서 박 전 대통령은 ‘무오류’의 인간”이라고 분석했다.

재구성된 진실을 전제로 지지자들은 박 전 대통령을 몰아세운 언론, 탄핵을 이끈 국회와 헌법재판소를 향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거짓언론들아 너희들 그 죗값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냐”, “탄핵인용은 북괴지령에 따른 인민재판이다”, “인민재판! 문화혁명! 마녀사냥!” 등의 내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부정적으로 언급된 헌재 관련 단어는 70회, 언론 관련 단어는 16회 등장했다.

지지자들의 이런 인식은 박 전 대통령의 말에 적극 호응한 결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정국에서 기자회견, 청와대 간담회, 언론 인터뷰에서 ‘사실’을 31번이나 언급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실’과 지지자들의 ‘진실’은 다르지 않다.

가톨릭대 안병욱 명예교수(국사학과)는 “(포스트잇) 대부분이 ‘사랑한다’, ‘탄핵무효’와 같은 천편일률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을 겪으면서 절대자의 생각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신만의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응원, 사랑 등의 메시지를 담아 붙인 포스트잇이 박 전 대통령 자택 담장에 붙어 있다.
◆아버지의 카리스마+어머니의 자애=‘순교자 박근혜’


지난 18일 삼성동 자택 담장에 박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의 사진이 나란히 담긴 현수막이 내걸렸다.

사진 속 박 전 대통령은 육 여사와 꼭 닮았다. 한복을 입었고 자택으로 돌아온 뒤에도 매일 아침 미용사들을 불러들여 정성을 쏟는 올림머리를 하고 있다.

지지자들에게 박 전 대통령은 ‘박정희의 카리스마’와 ‘육영수의 자애’가 결합한 복합체다. 많지는 않지만 박정희(11회), 육영수(3회)는 항상 함께 언급돼 단어 간 상관도가 높았다. 딱 2회 등장하는 ‘목련’도 눈길을 끈다. “이슬처럼 맑고 깨끗하고 목련처럼 순결한 대통령님을 지켜 드릴 것”이라는 내용이다. 목련은 육 여사가 좋아했던 꽃으로 알려져 있다.

신 교수는 “지지자들에게 박 전 대통령은 박정희의 카리스마에 육영수의 자애로운 이미지가 더해진 무결점의 존재, 일종의 신과 같은 존재”라며 “탄핵 결정 이후에는 순교자의 이미지까지 더해져 ‘박근혜 신화’가 완성됐다”고 분석했다.

강력한 아버지, 인자한 어머니의 결합인 박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사랑’(271회)이다.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항상 건강하셔서 우리와 함께 해주십시오” 등은 고백처럼 들린다. ‘건강’(143회)을 걱정하고 ‘우리’(183회)를 강조한다. 단국대 임명호 교수(심리학)는 “감정적인 용어를 자주 쓰고 있다”며 “우리라는 단어는 집단의식이 강하고 가족중심인 한국문화에서 박 전 대통령을 가족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우리애국힘내승리건강지켜박정희대한민국정의누명억울진실탄핵헌법재판소사기음모인민재판무효밝혀
◆말하지 않는 ‘최순실’, ‘역적’ 유승민

지지자들이 무엇을 말하는가 못지않게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도 중요하다. 탄핵 정국의 주인공인 최순실씨에 대해 지지자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장시호씨도 마찬가지다. 대신 유승민(5회), 김무성(3회), 고영태(6회), 문재인(3회), 박지원(4회)을 출연시켰다. 바른정당 김무성, 유승민 의원에 대한 비난이 특히 흥미롭다.

“김무성 유승민 하늘에 천벌을 받아라. 네 이놈!”, “탄핵은 원천무효 유승민은 나라의 역적”, “인명진, 김무성, 유승민, 박지원 등등 악질 역적들 물리치자” 등이 있다. 천벌, 역적 운운하는 것은 한때 박 전 대통령과 가장 가까웠던 두 사람에 대한 배신감의 표현이다. ‘순교자 박근혜’에게 두 정치인은 예수를 배반한 유다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신 교수는 “(국정농단의 당사자인) 최순실, 김기춘 이런 얘기가 나오면서 대화의 가능성이 열려야 하는데 지지자들은 사실적 실체로 사안에 접근하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글·사진=이창훈·안승진 기자 corazon@segye.com
도움=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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