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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배우자 사별'의 슬픔, 한국이 가장 높은 까닭은?

입력 : 2017-03-27 19:39:19 수정 : 2017-03-28 07: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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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미시건대 연구팀 분석 / 2002∼2013년 韓·美·英·유럽·中 55세 이상 2만6835명 대상 조사 / 한국인 사별의 슬픔 유독 심해… 美의 3배·英의 2.5배에 육박 / 모든 나라서 남성이 더 오래가… 노인 외로움 극복 대책 필요
“밉더라도 함께 지낼 때가 좋았다는 걸 영영 헤어지고 나서 깨달았다.”

2년 전까지 김모(64·여)씨에게 남편은 애물단지 같은 존재였다. 40년 전 백년가약을 맺고 한집에서 살았지만 시댁 살림을 도맡은 아내에게 남편은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시어머니 손에 이끌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뽕잎을 따러 다니는 아내를 남편은 무심하게 대했다. 사랑 받고 싶었던 만큼 반발심이 더욱 생겨 남편을 미워했다. 김씨는 “남편 밥 안 챙겨줘도 되는 여자가 가장 부러웠다”고 할 정도다. 그러던 남편이 2년 전 급성 뇌종양으로 발병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출가한 자식들은 먼 곳에 살았고 아무리 집안일을 해도 혼자 있는 시간은 차고 넘쳤다. 챙겨주기 귀찮은 밥보다 혼자 먹는 밥을 짓는 게 훨씬 힘들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정신과를 찾은 김씨는 “평생 아이들과 남편을 바라보며 살았는데 이제는 어디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됐다. 상처를 많이 준 남편이지만 이제는 너무나 보고 싶다”고 울먹였다.

한국인은 배우자를 잃은 슬픔을 유독 오래, 심하게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슬픔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사회 문화와 외톨이가 된 노인에 대한 사회의 지원 부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27일 미국노인학회의 ‘노인학저널 3월호’에 따르면 한국인의 우울 점수는 배우자 사별 전 3.49에서 사별 후 5.07로 크게 높아졌다. 미국 미시간대 인구연구센터 아푸르바 자다브 교수팀은 2002∼2013년 한국과 미국, 영국, 유럽, 중국의 55세 이상 고령자 2만6835명을 대상으로 배우자 사별 전후 우울 정도를 분석했다.

미국은 사별 전 1.25점에서 사별 후 1.86점으로 0.61점 올랐고 유럽연합(EU)은 0.85점(2.75→3.60), 영국은 0.54점(1.57→2.11) 상승했다. 반대로 중국은 사별 전 4.24점이었던 우울 점수가 사별 후 3.75점으로 낮아졌다.

배우자 사별에 따른 우울감은 모든 나라에서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오래 지속했다. 한국 여성은 사별 후 1년 이내 신체적·정서적 우울이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가 점차 안정세를 보였으나 남성은 2년 후에도 이런 감정이 가라앉지 않았다.

국내 통계로도 1인 가구의 우울증 경험 비율이 부부가 함께 살고 있는 경우보다 크게 나타났다. 2014년 보건복지부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우울증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1인 가구(14.5%)는 부부 가구(4.9%)보다 3배가량 많았다.

이번 연구에서 사별 전후 우울 점수 증가폭이 가장 낮게 나타난 영국은 노인의 외로움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중보건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영국은 외톨이가 된 노인에게 전화를 걸어주는 ‘실버 라인’과 남성 노인들에게 목공예를 가르쳐 주는 ‘남자들의 헛간’ 등 다양한 비영리단체가 전국 단위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홍진표 교수(정신건강의학)는 “사별 초기에 많이 울고 슬퍼하면 좀 더 빨리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한국의 노인 세대들은 감정을 억누르고 참으며 내면에 쌓아두는 경향이 있다”며 “우리도 해외처럼 노인의 외로움 극복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시급히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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