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미생들의 롤모델… ‘3라운드 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입력 : 2017-03-31 06:00:00 수정 : 2017-03-30 20:38:0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프로농구 팀들은 신인 드래프트에서 대부분 2라운드까지 지명한다. 형식상 4라운드까지 있지만 거의 지명권을 포기한다. 1라운드에서 뽑힌 10명도 프로에서는 성공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3라운드에서 뽑힌 선수들에게 프로 1군 무대는 ‘넘사벽’이다. 3라운드에 뽑힌 선수들의 계약기간은 2년이다. 그 안에 자신이 프로에서 통한다는 모습을 코칭스태프에게 보여야 선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인천 전자랜드 농구단 정병국 선수. 서상배 선임기자

인천 전자랜드 슈팅 가드 정병국(33)은 이처럼 생존조차 힘든 3라운드 이하 ‘미생’들에게 큰 희망이 되고 있다. 그는 2007년 신인 드래프트 3라운드 2순위로 뽑혔다. 전체 25명 중 21번째로 이름이 불렸다. 앞서 지명받은 선수들 절반이 코트를 떠났지만 정병국의 농구인생은 지금 절정이다. 
전자랜드 정병국이 지난 27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에서 열린 프로농구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식스맨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정병국은 지난 27일 2016∼2017 프로농구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식스맨상을 받았다. 3라운드 출신 선수의 정규리그 주요 상 수상은 프로농구 출범 이후 처음이다. 올 시즌 50경기에 나와 평균 13분58초밖에 뛰지 않으면서도 5.98점을 넣었다. 그는 필요할 때 투입돼 ‘한 방’을 터트리는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정병국은 “상을 받을 뻔한 적이 두 번 있었는데 번번이 놓쳤다. 상복이 없는 줄 알았는데 10년 만에 타서 정말 감사하다”고 수줍게 웃었다.
정병국에게는 ‘3라운드 신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3라운드 출신 선수 관련 기록을 매번 갈아치우고 있는 덕분이다. “‘3라운드 출신’이라는 단어가 너무 좋다”고 운을 뗀 정병국은 “3라운드로 프로에 왔을 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처음에는 꼬리표가 따라다녀서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그 부분이 더 부각돼 뿌듯하다. 후배들이 나를 보고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정병국은 3라운드로 뽑혔을 때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앞에 뽑힌 동기들을 나중에 연봉으로 꼭 역전하는 것이다. 2007년 최저연봉인 3500만원에 시작했던 정병국은 지난해 자유계약(FA)을 체결해 3년간 연봉 2억원에 사인했다. 그는 “전부 제치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 이룬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프로농구 전자랜드 슈터 정병국이 29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공을 잡고 슛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인천=서상배 선임기자

3라운드 출신 정병국은 슛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그는 통산 3점슛 성공률 45.5%로 이 부문 역대 1위다. 현역 시절 ‘람보 슈터’라는 별명을 얻었던 문경은 서울 SK 감독(39.5%)보다 높다. 키 183㎝로 비교적 작은 정병국은 슛 자세가 남다르다. 그는 “중학교 때 농구를 시작했다. 그때 은사님이 이충희 선배님 같은 슛을 던져야 한다면서 자세를 알려줬다. 스탭백(한 발짝 뒤로 물러나면서 쏘는 점프슛)과 페이드어웨이(비스듬히 점프를 뛰어 수비를 피해 쏘는 슛)를 그때부터 연마했다”며 “중학생 때는 무릎이 너무 아프고 왜 슛을 이렇게 어렵게 던지나 싶었는데 돌이켜보면 남들과 차별화된 덕분에 작은 키에도 살아 남았다”고 비결을 설명했다.

프로에 온 뒤에는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의 지도를 받아 스킬을 늘렸다. 정병국은 “유 감독님을 만나면서 스크린 이용법을 터득했다”며 “수비를 어떻게 따돌리는지 배워서 슛이 좀 더 좋아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병국은 슛은 좋지만 수비가 아쉬운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작은 키 단점도 있고 또 키에 비해 수비시 발이 느린 점도 있다”며 “나름 많이 노력했는데 극복이 잘 안됐다. 그래도 감독님이 수비 부담을 덜어주는 등 배려해주셔서 잘 뛰고 있다”고 말했다.

식스맨인 정병국은 몸이 덜 풀린 상태에서 코트에 들어간다. 그는 “감독님께서 제게 들어가자마자 찬스 오면 바로 쏘라는 지시를 한다. 교체로 들어가면 리듬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훈련할 때 가만히 앉아 있다가 몸 안 풀렸는데도 갑자기 슛을 던져보곤 한다”고 소개했다.

지난 시즌 끝나고 정병국은 FA 신분이 됐다. 첫 협상에서 구단과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시장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에게 손짓하는 팀은 없었고 다시 전자랜드 품으로 돌아갔다. 정병국은 “그때 생각하면 참 후회된다. 제가 조금만 양보했으면 좋게 계약했을텐데…… 욕심이 났다. 막상 돌아왔을 때 구단에서 안 깎고 잘 대우해주셔서 감사했다. 전자랜드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인 것 같다”고 돌아봤다.

전자랜드는 정규리그 6위를 기록해 턱걸이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31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서울 삼성과 첫 경기를 벌인다. 정병국은 “3라운드 출신 중에 가장 오래 살아남았는데 변함없이 계속 뛰고 싶다. 특별한 욕심은 없고 은퇴 전 전자랜드에서 우승 한 번 꼭 해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인천=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